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VS 인터넷 익스플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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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VS 인터넷 익스플로러
  • stonepillar
  • 승인 2014.11.04 1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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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인터넷. 인터넷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는 몰라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찾는 작업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까지 누구나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손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익스플로러나 크롬 같은 웹브라우저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 대 초반, 최초의 웹브라우저인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이 공개된 이래 많은 IT 기업들이 인터넷 시장을 점령하기 위해 웹브라우저 경쟁을 펼쳐왔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진행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이하 넷스케이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익스플로러)의 경쟁은 인터넷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많은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최초의 상용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최초의 웹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이 웹브라우저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1993년에 개발된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기여한 웹브라우저라고 할 수 있다. 모자이크는 마크 앤드리슨과 에릭 비나가 개발했는데, 마크 앤드리슨은 1994년 4월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웹브라우저 사업을 시작한다.
 
넷스케이프의 초기 코드네임은 ‘모질라(Mozilla)’였는데,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끌어 내리자(Mosaic Killer)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모자이크와 고질라(Godzilla)의 합성어다. 일본 괴수 영화의 그 고질라가 맞다. 모자이크를 능가하는 힘을 상징하기 위해 가상의 괴물인 고질라의 이름을 빌린 것으로, 실제로 모질라 재단의 로고에는 고질라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 그러나 모질라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고, 최종적으로 결정된 이름은 ‘넷스케이프’였다. 베타 버전은 ‘모자이크 넷스케이프’로 불렸는데, 1994년 10월 0.9버전으로 공개됐고 이후 12월 정식버전인 1.0 공개 당시에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로 변경됐다. 정식 버전 출시 전인 11월에는 회사 이름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로 바꿨다.
 

첫 번째 넷스케이프는 순수하게 웹브라우저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이후 버전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기능들을 하나 둘 붙여 나갔다. 2 버전에서는 이메일 기능이 추가됐고, 4부터는 더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아예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로 이름도 바꾸었다.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는 웹브라우저와 이메일 클라이언트, 주소록, 웹 편집기 등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인터넷 스위트였다. 이 시기 넷스케이프의 위세는 대단해서 최전성기인 1996년에는 거의 9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995년 8월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버블에 힘입어 나스닥에 상장했고, 시가총액 16억 달러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전성기 넷스케이프의 시장 가치는 최대 80억 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넷스케이프의 이러한 대성공은 최악의 라이벌을 시장에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웹브라우저 시장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라는 웹브라우저를 공개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넷스케이프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1996년 넷스케이프는 최전성기를 달리며 시장 점유율 86%를 찍기도 했다. 그러나 OS와 연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방위 압박과 넷스케이프의 후속 버전 개발에 실패하면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을 기점으로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말았다.
 

같은 해 넷스케이프는 42억 달러에 AOL에 인수됐고 6버전부터 9버전까지 지속적으로 새로운 버전의 웹브라우저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한 번 잃은 점유율은 다시 회복할 수 없었다. 넷스케이프를 인수한 AOL은 2007년 10월 15일 넷스케이프의 최종 버전인 9.0.0.6 버전을 공개했고, 2008년 3월 1일부로 넷스케이프에 대한 공식 지원을 종료했다.
 

 
반독점법도 막지 못한 독주, 인터넷 익스플로러
 
익스플로러는 1995년 8월, 윈도우95의 확장팩 개념인 ‘마이크로소프트 플러스! 포 윈도우95’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익스플로러의 초기 버전은 모자이크 웹브라우저 기술의 라이선스를 구입해 수정했기 때문에 넷스케이프와 비슷한 형태를 보여준다. 익스플로러2까지는 외형적으로 넷스케이프와 비슷했고, 기능적으로는 오히려 뒤처졌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익스플로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6년 8월에 출시된 3부터였다.
 

우선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고, 익스플로러의 상징과 같은 ‘e’ 아이콘도 이때부터 사용됐다. 기능적으로도 CSS, Active X, 자바 애플릿 등을 지원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익스플로러의 디자인과 기능이 개선되면서 일부 사용자들이 넷스케이프 대신 익스플로러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던 시장 점유율이 쉽게 좁혀지진 않았다. 1997년 10월 익스플로러4가 출시될 시점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18%에 불과해 넷스케이프의 72%와 여전히 큰 격차를 보였다.
 

이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기본 탑재하는 수동적인 전략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넷스케이프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대표적인 예가 IBM, 컴팩, HP 등 윈도우를 OEM으로 탑재해 PC를 제조하는 업체들에게 계약 조건으로 넷스케이프를 탑재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다소 치사한 방법들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독점법에 걸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결과론
적으로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반면, 넷스케이프는 오히려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넷스케이프는 4버전 이후 오픈 소스 정책으로 전환하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소스코드를 모두 공개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모질라’다. 넷스케이프는 모질라를 기반으로 한 넷스케이프5를 개발하려 했지만, 공개된 소스 코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처음부터 새롭게 개발을 해야 했다. 결국 넷스케이프5는 출시되지 못하고, 1998년 뒤 늦게 넷스케이프6를 선보였다.
 
그러나 넷스케이프6가 출시될 시점에서는 이미 시장의 대세가 익스플로러로 넘어가 있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온 익스플로러에 비해 넷스케이프6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기까지 했다. 1998년 2월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은 28%까지 하락해 있었고, 익스플로러는 69%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웹브라우저 경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후 익스플로러는 10년 이상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초기에는 시장 점유율 96%까지 장악하며 사실상 인터넷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인터넷과 익스플로러는 동의어처럼 인식될 정도였다. 한편, AOL은 2012년 4월 약 800여건의 특허를 10억 5600만 달러의 가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팔았는데, 이때 넷스케이프와 관련된 라이선스도 함께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넷스케이프는 최악이자 최고의 경쟁자 품에서 잠들게 된 셈이다.
 

 
익스플로러를 위협하는 도전자들
 
넷스케이프가 그랬듯, 익스플로러의 독주체제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물론, 넷스케이프 보다 길게 시장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2000년 대 중반부터 새로운 경쟁자들이 출현하면서 익스플로러의 독점 구조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선 웹브라우저가 넷스케이프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질라 재단의 파이어폭스였다. 모질라 재단은 앞서 언급한 모질라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위한 비영리 집단으로, 2003년 모질라 프로젝트를 관리하던 AOL에서 독립해 설립됐다. 모질라 재단은 2004년 오픈 소스 기반의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선보였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시장에 침투했다.
 
애플도 2003년 맥용 웹브라우저 사파리를 선보였고, 2007년에는 윈도우 버전의 사파리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웹브라우저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8년에는 구글의 크롬이 공개되면서 웹브라우저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현재의 경쟁 구도를 두고 2차 웹브라우저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금까지는 구글의 크롬이 가장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인프라의 문제로 여전히 익스프롤러가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
 

 
smartPC사랑 | 석주원 기자 juwon@ilovep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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