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네 마음대로였지만 끝낼 땐 아니란다
갤러그(Galaga)
갤러그(Galaga)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태초에 슈팅 게임이 있었다.’ 굳이 인간의 파괴본능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적을 해치우는 것이 당연해진 이 시대에, 현란한 움직임과 화려한 그래픽으로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을 해치우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특히, 1981년 오락실에 등장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팅 게임 갤러그는 아케이드를 넘어 콘솔 게임까지 점령하며 슈팅 게임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정환용 기자
기자의 과거는 독자들에게 전혀 이슈가 되지 않을 테니 잠시 서론을 풀어보겠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9년 당시, 기자는 상당한 ‘똘똘이’였다.(진짜다. 성적표 공개할까?) 비록 어린이였지만 중간시험과 기말 시험에서 만점, 소위 ‘올백’을 받았고, 성적표를 어머니께 드린 며칠 뒤 집에 가보니 식탁 위에는 무려 불세출의 비디오 게임기 ‘재믹스 V’가 있었다. 당시 약 13만 원 정도의 고가였던 재믹스는 당시 거의 최초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였고, 지금 물가로 보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를 세 대는 살 수 있을 정도로 고가였다. 아마 재믹스의 붉은 컬러에 매료된 뒤 기자의 성적이 곤두박질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부모님이 게임기와 함께 사 주셨던 대부분의 게임들은 롬팩의 제목만 한글일뿐이었지만 번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액션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묘기를 펼치며 점수를 쌓아가는 ‘서커스’, 엄마를 찾아 나무를 타야 하는 ‘요술나무’, 아찔한(?) 속도감으로 스틱이 부서져라 조종했던 ‘로드화이터’까지.(물론 정식 영문표기로는 ‘로드 파이터’가 맞지만, 이 기사의 제목이 ‘추억’ 아닌가. 고유명사라 치고 그냥 넘어가자) 매일같이 어머니께 등짝을 맞으면서도 스틱을 놓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자를 신나게, 혹은 열받게 했던 것은 슈팅 게임 ‘갤러그’였다.(‘Galaga’라는 영문 표기가 어째서 ‘갤러그’라고 명명돼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80년대의 슈팅 게임이었음은 틀림없다.) 신나는 것은 이해하는데 왜 열받았냐고? 참으로 무지했던 기자는 적그물에 납치된 전투기를 붙여 두 대로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게임을 시작한 지 1년이 넘게 지나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었지만, 당시 많은 친구들과 갤러그 점수 경쟁을 했는데, 번번이 1등을 놓치며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전투기가 적기에 끌려가면 ‘고문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어처구니없는 신념에 내 전투기부터 잡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갤러그의 시스템은 매우 단순하다. 오프닝이랄 것도 없이 게임이 시작되면 곧바로 적 외계인들이 차례로 줄지어 나타나고, 주인공의 전투기는 적기와 미사일을 좌우로 피 하며 레이저인지 총알인지 알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해 적기를 모두 격추시키면 된다.
중간 보너스 스테이지를 합쳐 4번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난이도와 스피드가 업그레이드된 적을 처음부터 다시 무찔러야 한다. 전투기 두 대가 ‘합체’하면 더 쉽게 클리어할 수 있으니 결합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악당도 참 못 할 짓이다. 전투기 한두 대 잡자고 수십, 수백 마리가 덤벼야 한다니...) 지금은 플래시 게임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고전 게임이 됐지만, 갤러그가 처음 발매됐을 당시에는 즐길 요소들이 꽤 많았던 게임이다. 누가 더 많은 점수를 얻는가(스코어어택)는 기본이고,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적기가 나타나는 방향이나 순서를 외워야 하는 것도 80년대 올드 게이머들이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적이 전투기를 향해 달려들다가 화면 아래로 나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화면 안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는 별안간 나타난 적기에 격추되기 일쑤다. 스테이지가 반복될수록 적기가 나타나는 패턴도 다양해져서, 한 바퀴 등장 세리머니를 하고 전열을 갖추는 척 하며 한 마리는 별안간 전투기로 달려드는 등 조이스틱에 땀을 쥐게 하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했다.
기자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재믹스와 오락실 게임을 통틀어 32스테이지까지 갔던 것이 기록인 듯하다.(물론 20년이 넘은 기억이라 23스테이지일 수도 있다)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플래시 버전을 잠깐 해 봤는데,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3스테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면서 오히려 게임센스는 초등학교 시절에 더 뛰어났던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지금이야 ‘이런 게임도 있었지’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던 기억도 나는 걸 보니 도트와 미디 음이 난무했던 과거의 게임들이 오히려 더 큰 집중력을 키워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기를 필두로 슈팅게임의 전성기는 시작된다. 갤러그처럼 종스크롤(縱, 세로 형식) 화면에서 좌우로만 움직일 수 있었던 주인공은 라이덴, 스트라이커즈 등을 거치며 화면 전체를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고, 주인공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출해 주는 절대적 무기 ‘폭탄’의 등장으로 슈팅 게임의 새로운 판도가 열리기도 했다. 슈팅 게임의 명인(?)이 남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죽기 전에 폭탄은 다 쓰고 죽어라’는 명언은 슈팅 게임의 교과서 제목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진리다. 또한 횡스크롤(橫, 가로 형식) 게임도 갤러그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며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락실을 찾으면 게임기 10대 중 서너 대는 슈팅 게임이었을 정도니 장르에 대한 인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기자가 한창 슈팅 게임에 빠졌을 때는 라이덴 2’와 ‘스트라이커즈 1945’을 차례로 즐기고 마지막은 웃기는 횡스크롤 슈팅 게임 ‘부기윙’으로 오락실 순회를 마무리했다. 물론 세 게임 모두 점수는 형편없었다. 혹시 알고 있나? 이 슈팅 게임에서 발전한 것이 일인칭 슈팅, 약칭 FPS라는 것을. 고전 FPS의 명작 ‘울펜슈타인’부터 현재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단순한 8비트 슈팅 게임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저격 직후 칼 뽑았다 다시 조준’도 따지고 보면 슈팅 게임이 그 어머니, 아니 고조할머니쯤 되는 것이다.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생각난 김에 에뮬레이터나 플래시 버전 고전 게임들을 찾아서 추억의 슈팅 게임을 다시 즐겨봐야겠다. 온고지신이라고, 옛 게임을 제대로 익혀 새 게임을 잘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비록 새로운 슈팅 게임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지만, 과거의 명작들도 그 재미는 여전할 것이다. 괜히 ‘명작’이 아니니까
지난 2011년 갤러그 출시 30주년을 맞아 출시된 최신 버전 ‘갤러그 리젼 DX’. 무려 ‘소울 칼리버’ 시리즈의 개발자 중 한 명인 타다시 이구치의 참여로 매우 박진감 넘치는 그래픽으로 재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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