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밤낮 없고 뒤바뀐 수면 사이클이 원인
현대인들은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다. 밤늦게까지 잔업을 하는 것은 그나마 생산적인 일.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 노느라 늦게 자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은 자정까지 야간자율학습이다 학원이다 해서 ‘잠잘 권리’를 침해받는 실정이다. 잠은 중요하다. 사나흘 잠을 설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몸이 축날 정도다. 장시간 잠들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불면증은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보는 질병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편차는 크다. 어떤 사람은 습관화해 거의 병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잠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편차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잠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현상이며, 해가 지면 자연스레 피곤이 몰려오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올빼미처럼 야행성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주행성이어서 밤이 되면 졸려서 활동을 중지한 뒤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면, 다음날 심한 피로와 함께 집중력 저하, 두통, 짜증, 무기력감 등 불편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팽팽한 신경, 일시적 불면증 불러
일시적인 불면증은 보통 평소와 다르게 심각한 고민을 마음에 품고 있거나 몰두해야 할 일이 많을 때 흔히 일어난다. 신경이 흥분되어 있는데다 집중력까지 최고조에 달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소풍을 가던 날처럼 기대감에 들떠서 잠을 이루지 못한 경험들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불면증도 그것의 연장선상 혹은 같은 맥락이다. 이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잠은 제대로 못 이뤘지만 피로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 소풍을 나섰을 수도 있다.
좀 더 자라 보면 커피 같은 카페인 음료를 마신 뒤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시험 전날, 첫사랑의 설렘 등도 불면의 이유가 된다. 이와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대부분 몇 날 지새우다가 고민이 해결되거나, 문제됐던 일들이 풀리면서 신경이 안정을 되찾고, 정상적인 수면 사이클로 돌아간다. 때문에 이를 두고 약을 써야 할 정도로 심각한 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흥분했거나 신경이 곤두섰다면 약을 써야 한다. 필자는 불면증으로 약을 먹은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신경이 곤두서서, 또 한 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한 일로 마음 속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해서였다. 두 번 모두 수면제를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귀비탕’이라는 한약 처방을 받았고, 두 번째는 ‘황련아교탕’을 복용한 뒤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귀비탕은 소화기가 약하고 심장 혈이 부족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신경이 흥분됐을 때 효과적이다. 소화기를 편하게 해주고 기화 혈을 조화시키기 때문이다. 황련 아교탕은 분노와 울화로 심장의 열이 많아져 얼굴이 붉어졌을 때,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처방이다.
이 외에도 한방에서 쓰는 불면증 처방은 진단에 따라 다양하다. 즉, 모든 불면증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본인 상태에 맞춰 전문 한의사와 상담 후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을 안정시켜야 불면증 치료도 효과적
디스플레이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CPU 처리속도만큼이나 빠른 사고력을 지녔다. 모니터를 통해 시각을 자극하는 화면에 익숙하다보니 신경이 늘 흥분되어 있곤 한다. 여기에 업무나 학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 악화일로로 치닫기 쉽다. 100년 전에는 해지면 잠자리에 들었지만 지금은 밤에 일해야 효율이 느는, 이른바 올빼미족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면증에 걸리는 이유도 많다. 따라서 해결을 위해서는 불면증의 주된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한방의 진단법은 단순히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체질적인 면까지 두루 살피는 식이다. 기본적인 식생활부터 외모, 정서 상태까지 고려하는데, 한약처방은 양약의 수면제에 비교하면 잠을 억지로 들게 하는 마술(?) 같은 효능은 미흡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불면증 치료 한약을 아무리 먹어도 수면제처럼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방에서 내놓는 불면증 치료제는 흥분한 신경을 안정시키고 내장기관 기능을 올바르게 잡는다. 장기적으로 기와 혈의 순환을 도와 심신을 안정시켜 정상적인 생활과 수면 주기가 되도록 한다. 따라서 일반인이 잠을 자겠다고 한약을 먹어도 졸리지 않는다. 상황에 맞춰 처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노로 심장 열이 뻗히면 그 열을 식히기 위한 약을 처방한다. 이때 약은 쓰다. 또 생각이 많아 심장과 간의 혈을 소모해 두근거리고 흥분하면 진액과 혈을 보충하는 달콤한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열이 많아 신경이 심하게 흥분하면 차갑고 무거운 성질의 약으로 신경을 눌러 안정시키기도 한다.
불면증을 침으로 다스릴 때도 있다. ‘조기치신’이라 해서 기를 조절하고 정신을 다스린다는 원리에 입각해 쓴다. 사람의 신경활동에 관여하는 장기들, 즉 심장, 간, 쓸개, 비위 등을 조절하는 혈 자리나 신경을 안정시키는 혈 자리에 침을 놔 들뜬 신경을 가라앉혀 불면증을 치료한다.
불면증에 효과가 뛰어난 산조인.
산조인차, 불면증 해소에 특효
한방차 중에는 불면증을 풀어주는 효과를 지닌 것들도 있다. 그 중에서 으뜸은 ‘산조인’이라는 약재로, 신경 안정과 마음을 편히 해주는데 효과가 좋다. MBC 드라마 중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허준>에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허준이 중국 사신 불면증을 치료하면서 선조인 효능을 설명하는데, “구운 것은 잠을 부르고 날 것은 잠을 깨게 한다”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구운 것이나 날 것 모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기본적으로 구운 게 향이 좋아 약재로 쓴다.
한방차 재료로 자주 등장하는 인삼도 효과가 좋다. 소화기가 약하거나 기운이 부족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의 신경 안정을 돕는다. 당귀도 혈행을 좋게 해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신경을 안정시킨다.
이 밖에 신경 안정 효과를 지닌 약재들도 많지만, 이들을 차로 즐기기에는 맛이 떨어져 제외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한방에서 불면증 치료를 위해 다양한 약재를 조합한다는 사실. 즉, 전문적인 치료는 한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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