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방구차부터 레이싱 매니지먼트 게임까지 - 기름 값 걱정 없는 레이싱 게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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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방구차부터 레이싱 매니지먼트 게임까지 - 기름 값 걱정 없는 레이싱 게임의 모든 것
  • PC사랑
  • 승인 2011.05.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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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이싱 게임의 어머니, 모터스포츠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들어서 간신히 F1 국제대회를 유치했을 뿐, 자동차 경주와 관련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걸음마 단계인 국내 실정과 달리, 해외는 프로스포츠로 당당히 자웅을 겨룬 지 오래다.
세계 4대 자동차 경주라면 프랑스에서 열리는 ‘르망 24’,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열렸던 ‘F1’, 거친 사막을 횡단하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 그리고 미국에서 열리는 ‘나스카’ 등을 꼽는다. 4개 대회 모두 억 단위의 팬들을 거느렸을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열기는 식지 않을 전망이다.

레이싱 게임은 이러한 모터스포츠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포츠라는 태생 때문인지 종종 스포츠 게임 분야로 취급받는다. 지금은 다른 프로 스포츠와 구분해 ‘레이싱 게임’이라는 장르로 독립했다.
본래 모터스포츠는 기록이나 순위로 승부를 가리는데, 머신의 속도나 운전자의 조작 실력, 컨디션 같은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어디까지나 본디 목적인 재미를 고려한 연출 기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실제 모터스포츠와는 사뭇 다른 요소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변수를 안고 태어났다 해도 레이싱 게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도드라진다.

교통수단 l 반드시 자동차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이싱 게임 대부분에는 ‘교통수단’이 등장한다.
맵  l 무한정 달리는 게 아니다. 트랙이나 거리처럼 일정한 경로가 존재한다.
기준  l 순위나 랩타임과 같은 ‘승부’를 가리는 기준이 있다.
대전 상대 l 혼자 달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인공지능이나 다른 게이머와 함께 자웅을 겨루는 식이다.

첫 번째 항목을 보면 레이싱 게임의 교통수단이 반드시 자동차는 아니라고 했다. ‘리얼’을 추구하는 게임이라면 실존하는 운송수단이 등장하지만, 다양한 재미를 위해서 꼭 운송수단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예컨대 <에어라이더>에는 비행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말과 나의 이야기 : 앨리샤>처럼 경주마를 쓰기도 한다. 심지어 <테일즈런너>처럼 교통수단 대신 달리기로 시합을 벌이는 레이싱 게임도 있다. 이 밖에도 지금까지 나온 레이싱 게임들을 살펴보면 수상스키, 인라인스케이트, 보트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앞으로는 어떤 탈 것이 등장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부분이다.


▲<허스키 익스프레스>는 개썰매로 경주를 펼치는 레이싱 게임이다.


▼사실적인 레이싱 게임으로 유명한 <포르자 모터스포츠>의 한 장면.

레이싱과 시뮬레이션, 경계가 허물어지다
교통수단을 조작한다는 점에서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게임과 레이싱 게임을 자주 혼동한다. 분류는 크게 경주 그 자체에 집중한다면 레이싱 게임으로, 현실적인 조작을 재현하는데 치중했다면 시뮬레이션으로 본다.
최근 이런 기준마저 PC나 콘솔 기기 같은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하고 그래픽이 섬세해지면서 흔들리고 있다. 레이싱 게임에서도 실제 교통수단을 조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실제로 시뮬레이션과 같게 시스템 구현에 힘쓰는 게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간극이 좁혀진다면, 앞으로는 레이싱 게임과 시뮬레이션 게임 경계는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하드웨어의 기술적 발전에 힘입은 레이싱 게임은 내부적으로 성향이 분명히 나뉘는 추세다. 크게 두 가지로, 먼저 진짜 자동차를 주인공 삼아 소리와 화면을 강화, 실제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느낌을 재현하는 쪽에 치중하는 경우다. 반대로 그래픽이나 현실성보다는 오락성에 중점을 두고, 게임에서만 존재하는 아이템 등을 쓰는 아케이드 성향이 강한 레이싱 게임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육성이나 매니지먼트 개념을 도입하면서 복합장르 형태로 진화하는 경우도 있다. 레이싱 게임이라는 장르도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세분화하는 추세에 접어든 것이다.

요사이 흥미로운 사실은 ‘레이싱 휠’을 찾는 손길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게임을 더 그럴싸하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인데, 실제 운전대와 흡사한 레이싱 휠을 이용해 마치 진짜 운전하듯 게임을 즐긴다. 최근 등장한 레이싱 게임들 중에는 이 레이싱 휠이 없으면 제대로 커브 길을 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마니아 중에서는 레이싱 휠도 모자라 아예 실제 자동차 운전석처럼 꾸미고 게임을 즐기는 이도 있을 정도다.

<방구차>는 레이싱 게임인가, 아닌가?
1980년대, 오락실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아케이드 게임장 인기 게임 중 하나가 <랠리 X>다. 그 시절 코 묻은 돈을 오락기에 바친 이들이라면 ‘방구차’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들릴 것이다.
이 게임은 1980년 남코에서 출시한 것으로, 게이머가 자동차를 가지고 자신을 쫓는 차들을 따돌리며 미로 속에서 깃발 10개를 획득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게이머의 자동차보다 적이 더 빠르기 때문에 이들을 따돌리려면 바짝 긴장하는 것은 물론, 빠른 컨트롤도 필수였다. 또 게이머를 방해하는 자동차들을 따돌리는 유일한 방법이 마치 방귀를 뀌듯 뿌리는 연막탄이라, 그 당시 아케이드 게임장에서는 ‘방구차’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레이싱 게임일까?

지금의 레이싱 게임 기준으로 보면 교통수단인 자동차를 조작하고, 인공지능 적들을 피하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레이싱 게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정한 경로에서 속도를 경쟁하는 레이싱 게임의 기본 개념과는 또 달라서 딱 잘라 ‘레이싱 게임이다’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혹자들은 미로 속에서 원하는 아이템(깃발)을 얻는 방식이나 무작위로 등장하는 맵, 그리고 조작 대상이 캐릭터에서 자동차로 바뀌었을 뿐, <팩맨>과 유사한 액션 게임이라고도 말한다.



<방구차>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랠리-X>.

◀레이싱 게임 마니아들의 로망, 레이싱 휠.

#2  아케이드 게임장과 레이싱 게임
대한민국에서 레이싱 게임은 <카트라이더>의 전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카트라이더>가 흥행하면서 ‘국민 게임’ 반열에 오른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레이싱 게임도 재조명 받기 시작했지만, 그전까지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전에는 레이싱 게임에 대한 명사화된 개념이 없어서, 1990년대 중후반은 물론, 2000년대 초까지도 게이머들 상당수가 레이싱 게임을 단순히 자동차 혹은 오토바이 게임정도로 여겼다.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면 대한민국에서 레이싱 게임은 오랜 세월을 장르라고 구분 받지 못했다. <니드 포 스피드>나 <그란 투스리모>와 같은 레이싱 게임이 마니아를 확보하기 시작한 근래에도 게임전문지에서나 독자적인 장르로 볼 뿐이었다. 평범한 게이머들 인식 속에서 ‘레이싱 게임’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요즘처럼 신작이 나오면 전문가는 물론, 평범한 게이머들까지 마니아를 자처하며 ‘이 게임은 이런 장르다!’라고 담론을 나누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포츠 게임의 굴레를 벗어나
한동안 레이싱 게임이 어정쩡한 장르로 비친 이유는 또 있다. 레이싱 게임의 근간은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스포츠 게임으로 봐야 옳다. 허나 2000년대 초 인기를 얻기까지 모터스포츠 인기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즉, 프로야구가 시작하면 야구 게임 접속자가 늘고, 월드컵이 열리면 축구 게임 판매량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레이싱 게임은 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다른 스포츠 게임과 달리 왜 국내에서만 레이싱 게임이 모터스포츠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까? 해답은 빤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F1 레이스가 처음 열렸을 정도로 모터스포츠의 불모지였다. 모터스포츠 인구가 적으니 당연히 시너지 효과는 내고 싶어도 못 냈다.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오랜 시간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묘하게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싱’이라하면 해외에서는 모터스포츠나 자동차를 떠올리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레이싱 모델’이라고 순화해 부르는 ‘레이싱 걸’이 대부분이다.

이 부분은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마니아나 제작자들에게 곤혹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실제 모터스포츠나 차량 관련 행사에서 모델들이 모터스포츠를 돋보이게 하는 조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주연에 해당하는 머신이나 모터스포츠는 무시하고 조연 격인 모델들에게 집중하는 게 당연시 되고 있다.
모델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는 상황은 모터스포츠를 위해서든 게임을 위해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모델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흐리는 풍조를 조장하는데 게임계 책임도 일부 존재한다.
G스타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관람객에게 충실한 게임 설명 대신, 모델들을 경쟁적으로 내세우며 게임의 본질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 결과, 한때 ‘G스타는 걸스타’라는 모욕적인 오명에 부실한 행사 내용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최근 지스타는 모델들 복장 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행사에 내실을 기하며 ‘걸스타’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알아두면 유용한 모터스포츠 용어
레이싱 게임은 모터스포츠에서 태어난 게임이니, 모터스포츠 용어 일부를 게임 이름이나 게임 안에서 그대로 쓰고 있다. 알려진 것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정리했다.

드리프트(Drift)
트랙 코너를 신속하게 돌아 나올 때 쓰는 운전 기술. 원심력과 마찰력을 이용한 코너링 기법이다. 운전자가 의도하는 것이라 빙판이나 젖은 땅에서 미끄러지는 것과는 다르다. 드리프트를 쓰면 자동차 앞은 코너 안쪽 방향으로 돌고, 뒤는 바깥쪽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이 미끄러짐을 이용해 코너를 돌아 차가 뒤집히거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피하는 기술이다.

리타이어(Retire)
경주 중 차가 망가지거나 코스 이탈, 운전자 부상 등의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레이싱 게임에서는 제한 시간이나 일정 등수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리타이어로 처리해 게임이 끝나거나 패배로 처리한다.

블로킹(Blocking)
뒤쫓아 오는 다른 차를 추월하지 못하게 자신의 차로 상대 경로를 가로 막는 행위. 실제 모터스포츠에서는 자신의 머신보다 빠르게 뒤쫓아 오면 진로를 양보해야 하며, 직선 코스에서 경로를 바꿔가며 상대 진로를 의도적으로 막으면 주행 방해로 간주한다. 게이머들은 이를 ‘막자’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비신사적인 행위로 간주하지만, 팀플레이에서는 전략적으로 쓰기도 한다.

폴 포지션(Pole Position) 
한 번에 머신 여러 대가 동시에 출발하는 레이싱 경기에서 맨 앞줄, 제일 앞선 자리를 뜻하는 말. 경주에서 제일 앞이나 제일 좋은 위치를 배정받는 상황을 일컫는 말도 된다. 이 자리는 통상적으로 예선에서 성적이 제일 좋은 차량에게 주어진다. 먼저 출발하면 선두로 나설 수 있어 유리하지만, 그만큼 경쟁자들의 견제를 한 몸에 받아야 한다. 때문에 폴 포지션을 받았다 해서 반드시 경주에서 우승한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작년에야 F1 레이스가 최초로 개최되었다.


◀1980년대에 나온 <폴 포지션>은 당시 기준으로 무척 사실적으로 비쳤다.

90년대 오락실 터줏대감이 되다
최초의 레이싱 게임은 1970년대 중반 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나온 애플 II나 MSX 규격 PC 같은 8비트 PC는 성능이나 보급 수준에서 게임 문화를 선도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자연히 흑백 모니터에서 즐기는 레이싱 게임은 실제 오토바이나 자동차 모양의 컨트롤러를 갖춘 오락실(아케이드 게임장)의 레이싱 게임과는 양적, 질적으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연히 레이싱 게임을 하려면 아케이드 게임장에 가야 했다.

레이싱 게임은 1980년대 부흥기를 시작해 1990년대 전성기까지 아케이드 게임장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 중 남코에서 내놓은 <폴 포지션>은 인기 흥행작 중 하나다. 1982년 나온 이 게임은 후속인 <폴 포지션 2>가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F1에서 쓰는 자동차 모습과 움직임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임으로, 속도에 따라 저속 기어와 고속 기어를 바꾸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체크포인트를 지나면 제한시간이 조금씩 연장됐는데, 이런 특징은 이후에 나오는 레이싱 게임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밖에도 이 게임에는 실제 레이싱 트랙을 모델링해 썼는데, 1편부터 등장한 후지(FUJI)라는 트랙은 실제 일본에 위치한 후지 스피드웨이 트랙을 본뜬 것이다.

이후 <폴 포지션> 시리즈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체감형 레이싱 게임처럼 실제 운전대를 본뜬 컨트롤러를 달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무리하게 다루다 핸들이나 기어가 상하는 일도 빈번했고, 업주들이 빨간 글씨로 ‘고장 시 변상시킴’ 따위의 경고 문구를 붙이기에 이르렀다.

이 게임은 다른 차나 코스 주변 광고물에 닿기만 해도 그대로 차가 폭발하는 판정 기준 때문에 악명도 높았다. 조작이 익숙하지 않는 이들은 동전만 버리기 일쑤였고, 지금도 에뮬레이터로 즐기는 게임 중 조작이 어려운 게임으로 손꼽힌다.

사실적인 묘사의 <행 온>, 꿈같은 드라이브 <아웃 런>
오락실에서 <폴 포지션>의 인기는 뜨거웠다. 그 뒤를 이은 게임은 세가에서 나왔는데, <행 온>(Hang On)과 <아웃 런>(Out Run)이다. <행 온>은 1985년 나온 오토바이 레이싱 게임으로, <폴 포지션>과 비슷하지만 자동차 운전대 대신 오토바이 핸들이 달린 형태였다. 오토바이를 조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게이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오토바이가 커브를 돌 때 본체가 많이 기울어지면 바닥과 마찰이 일어나 속도가 줄어드는 시스템은 당시 기준으로 꽤 사실적인 연출이었다.

<행 온> 역시 광고판 같은 장애물이나 상대 오토바이와 부딪히면 오토바이가 폭발하는 식이라 초보자가 완주하려면 몇 천 원을 써야할 만큼 어려웠다. 이 게임은 후속인 <슈퍼 행 온>이 나온 이후로도 오랜 시간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다.
<행 온> 뒤를 쫓아 나온 <아웃 런>은 게이머가 빨간 페라리에 금발 미녀를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레이싱 게임이다. 기본 시스템은 그 무렵 다른 레이싱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전 레이싱 게임과는 거리를 두는 세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분기 시스템. <아웃 런>은 도로를 달리다보면 중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때 게이머는 어떤 길을 달릴지 선택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코스도 달라지고 완주 후 엔딩도 변한다. 자연히 게이머들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에 동전을 더 써야 했다.
실감나는 그래픽도 인상적이었다. 단색의 트랙이나 아스팔트가 전부였던 다른 게임과 달리 절벽, 야자수, 다양한 표지판들은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 도로를 달리는 듯했다면 거짓말이고, 지루한 다른 게임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었다.

리얼리티나 게이머를 방해하는 수단도 다양했다. <행 온>은 게이머와 비슷한 생김새인 인공지능 오토바이가 방해꾼 노릇을 했다. <아웃 런>에서는 실제 도로와 마찬가지로 일반 자동차부터 덤프트럭까지 등장해 박진감을 더했다. 이 밖에 배경음악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점도 특징이었다. 이후 <아웃 런 2> 등 여러 속편이 나왔고, 2009년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용으로 <아웃 런 : 온라인 아케이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슈퍼 행 온>은 오토바이 레이싱 게임으로 인기를 얻었다.


<아웃 런> 시리즈 최신작<아웃 런 : 온라인 아케이드>.

#3  유행 변화와 찾아온 침체기
레이싱 게임은 90년대까지 오락실에서 ‘체감형 게임’으로 다른 게임보다 비교 우위를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관심만큼이나 우스운 일도 많았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다보니 기어 변속기가 망가지기 십상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속도를 내지 못해 제대로 게임을 즐기지 못하기도 끝나곤 했다. 또 브레이크가 망가져 필요할 때 서지 못해 제대로 된 커브도 하지 못하고 벽만 들이받다 끝나는 일도 많았다.

체감형 게임기 이외에도 <로드 파이터>나 <랠리 바이크>처럼 체감형 컨트롤러를 쓰지 않은 레이싱 게임 인기도 많았다. 1984년 탑 뷰(3인칭으로 내려다보는 시점) 방식으로 나온 <로드파이터>가 대표적이다. 제법 속도감도 느껴졌던 이 게임은 레이스 중간에 아이템들을 충실히 획득해야 완주할 수 있다. 때문에 단순히 빨리만 달린다고 될 일이 아니고 컨트롤과 적절히 아이템을 얻는 실력이 필요했다.

액션 게임 같은 요소도 있었다. 다른 차를 벽에 부딪치게 만들어 망가뜨리면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점은 게이머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콘솔 게임기로 이식한 뒤에도 가정용 레이싱 게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로드 파이터 2010>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체감형 컨트롤러를 쓴 오토바이 레이싱 게임이 <행 온>이라면, 일반 컨트롤러를 적용한 오토바이 게임으로 <랠리 바이크>(원제: 대시 야로)가 있다. 이 게임은 게이머가 조작하는 오토바이에 연료 게이지가 있어, 다른 오토바이와 충돌하거나 조작이 서투르면 게이지가 사정없이 깎였다. 각 코스에는 일정 거리마다 연료를 채우는 주유소가 있어서 채우면 됐다. 대신 쉬는 동안 다른 오토바이들이 추월하기 때문에 애초에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게임을 깨는 조건은 조금 특이했는데, 각 무대에 따라 커트라인에 해당하는 등수가 존재했다. 이에 따라 레이스 중에 연료가 다 떨어져 포기해도 종료됐고, 결승점을 통과해도 등수에 들지 못하면 게임이 끝났다.


확 달라진 리메이크작, <로드 파이터 2010>.

격투 게임에 밀려 찬밥 신세로
이 무렵, 레이싱 게임들은 오락실에서 ‘특별한 게임’ 대우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던 판도에 이상 징후가 감돌았다. 90년대 들어 아케이드 게임장 단골 메뉴가 레이싱 게임에서 <파이널 파이트>나 <스트리트 파이터 2>와 같은 격투 게임으로 변한 것. 이 시기에도 새로운 레이싱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미 게이머들의 관심은 온통 격투 게임에 쏠려 있었다. 이는 단지 레이싱 게임뿐만 아니라 격투 게임 이외의 모든 장르 게임들이 찬밥 신세로 전락하던 시절이다.

격투 게임 쏠림 현상은 레이싱 게임이 질적 완성도가 나빴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게이머 기호가 변했을 뿐이다. 1990년대를 전후해 나온 레이싱 게임들을 살펴봐도 이전 게임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예컨대 <체이스 HQ>라는 게임은 게이머가 형사가 돼서 범인을 쫓는 방식이다. 도주 차량을 어느 정도 부숴야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시스템은 독특했다. 또 <버추어 레이싱>은 세가의 다른 버추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버추어 레이싱>에 이어 나온 <데이토나 USA>는 당시 출시한 게임들 중 최고 수준이었다. 폴리곤 처리 능력이나 그래픽 면에서 확연히 다른 리얼리티를 보였고, 기어도 수동과 자동을 선택할 수 있는 등 실제 운전 환경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배경음악으로 쓴 테마곡도 인기였으니 당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간 <아웃 런>이 지키던 자리를 <데이토나 USA>가 꿰차는 등 오락실 레이싱 게임의 세대교체 주역이었다. 이후 <이니셜 D>가 등장하기 전까지 레이싱 게임의 왕좌를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게임도 레이싱 게임 마니아들의 일관된 사랑을 받았을 뿐, 격투 게임으로 넘어간 아케이드 게임장의 유행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데이토나 USA>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게임장의 세대교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레이싱 게임 관련 주요 에피소드
게임기에 진짜 오토바이 엔진을 달았다면?
스즈키 유는 세가에서 <행 온>, <아웃 런>, <버추어 레이싱> 등을 제작한 유명 개발자다. 그는 처음 만든 <행 온>을 실제 오토바이 모양으로 꾸미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실제 오토바이 엔진까지 달 셈이었다. 물론 계획은 무산됐지만, 만약 진짜 엔진을 단 게임기가 나왔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게임은 알겠는데, 노래는 몰라요
<행 온>이나 <아웃 런>을 해 본 게이머라면 스크린샷만 봐도 기억이 나겠지만, 정작 원래 게임의 배경 음악을 아는 이는 드문 편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기계에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달아 원래 나오는 음악 대신 대중가요를 트는 게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레이싱 게임
<체이스 HQ>는 개발자들이 게임 개발 도중 드라이브를 하다가 과속 때문에 경찰에게 쫓겨 체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게임 안에서 경찰이 범인이 탄 차량과 옥신각신하면서 차를 부수는 게 다 경험이었을지도 모를 일.

나 이런 게임이야! 그런데 아무도 몰라봐?
반다이 남코의 인기 게임 <릿지 레이서>는 <그란 투리스모>와 경쟁할 만큼 장수한 게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인기를 끌지 못했다. 심지어 1999년 한 뮤직비디오에서 시리즈 4탄 오프닝을 무단으로 도용했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8년 뒤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가 <파이널 판타지 7 : 어드밴트 칠드런>을 도용하면서 그제야 화제가 될 정도였다. <릿지 레이서>의 잊고 싶은 어두운 과거.

게임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그란 투리스모> 제작자인 야마우치 카즈노리가 처음 게임 아이디어를 냈을 때, 대다수 업체들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게이머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도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는데, 2009년 독일에서 열린 경주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자동차 전문 웹진인 <모터트렌드>는 매년 발표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으로 그를 꾸준히 꼽을 정도다.

#4  PC 성능과 맞물려 싹튼 레이싱 게임
마니아 사랑 15년, <니드 포 스피드>
1994년, PC를 시작으로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한 <니드 포 스피드>는 레이싱 게임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보다 열악했던 1990년대 도스 환경에서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그래픽을 통해 수준 높은 레이싱 게임을 선보였다. 당시 ‘완성도와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킨 레이싱 게임’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초창기 시리즈인 1, 2편에서 실제 차량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2탄의 오프닝 영상은 지금까지도 시리즈 최고 영상으로 꼽힐 정도다.

<니드 포 스피드>는 초기 PC 플랫폼에 집중하다가 후속부터 PC와 콘솔 게임기도 동시에 나오는 멀티 플랫폼 체제를 기본으로 삼았다. 일부 시리즈는 PSP 같은 특정 플랫폼으로만 나오기도 했다.

첫 작품과 후속 외에도 <니드 포 스피드 : 언더그라운드>나 <니드 포 스피드 : 시프트> 등 타이틀 대부분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니드 포 스피드>를 세계적인 레이싱 게임 브랜드로 각인시켰다. 실제 판매량도 2009년 10월 기준 1억 장을 팔며 전 세계에서 27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도 15개 시리즈가 PC와 콘솔 기기를 통해 60개 이상 나라에서 22개 언어로 판매 중이다.
리얼리티란 이런 것, <그란 투리스모>1990년대만 해도 인기 레이싱 게임들은 대부분 오락성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실제 차량을 모는 듯 한 느낌을 재현한 게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적인 차량 묘사와 더불어 조작도 진짜 같은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이 등장한다. 바로 <그란 투리스모>다.

<그란 투리스모>는 등장과 동시에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던 <릿지 레이서>를 단박에 제쳤다. 뿐만 아니라 오락성에만 치중하던 당시 레이싱 게임 판도를 바꾸고, 플레이스테이션 킬러 콘텐츠로 급부상했다.
이 시리즈는 이용 등급 제한이 없는 게임이지만, 특유의 사실성 때문에 차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더 어울렸다. 실제로도 성인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특유의 사실성은 오락성을 강조한 다른 게임에 비해 친숙해지는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런 극단적인 성향은 마니아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정도고, 그런 갑론을박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5편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5000만 장 이상 팔렸다. 플랫폼이 플레이스테이션에 한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니드 포 스피드> 시리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바다 건너서는 레이싱 게임 산업이 쑥쑥 성장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락실 주류 게임에서 몰리는 등 소수 마니아들이 찾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플랫폼으로 등장한 레이싱 게임들은 여전히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온라인 활성화로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이 큰 인기를 끌면서 레이싱 게임은 변방에서 귀양살이를 해야했다.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는 지금까지 1억장 이상 팔렸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만 출시되는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5  메마른 국내 레이싱 게임 시장, 단비를 맞다
MMORPG와 결합 시도한 레이싱 게임들
2000년 무렵, 다른 온라인 게임들처럼 레이싱 게임도 온라인화 시도가 이뤄진다. 2001년, 그리곤 엔터테인먼트가 배틀 레이싱이라는 주제로 <더 크러쉬>라는 게임을 내놨다. EA도 비슷한 시기에 <모터 시티 온라인>을 출시한 바 있다.
1970년대 도시가 배경인 <모터 시티 온라인>은 여러 경기장을 오가는 레이싱을 토대로 삼았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고른 자동차를 개조하면서 가치와 성능을 높이는 육성 방식으로 재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두 게임 모두 초기 기대와 달리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하며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후 이목을 끈 게임은 국내 최초로 실제 지형과 도로를 배경 삼아 여러 게이머들이 경주를 펼치는 현대디지털엔터테인먼트의 <시티레이서>다. 이 게임은 일반적으로 10명 내외의 게이머가 참여하는 평범한 레이싱 게임과 달리, 실제 서울의 도로를 그대로 재현한 공간 속에서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동시에 경주를 펼치는 식이다. 다른 온라인 레이싱 게임에 비해 마치 MMORPG 속 커뮤니티처럼 게이머들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름 성과도 거뒀다.

문제는 게임 안팎에서 나타났다. 유료 아이템인 차량은 밸런스를 붕괴시켰고, 최근까지 라이선스 계약을 맺지 않아 실제 차량에 가짜 이름을 붙이는 눈속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잘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꾸준하게 차량 업데이트와 유지보수로 온라인 레이싱 게임의 한축을 맡고 있다. 앞으로도 모터스포츠 팀과 연계하는 등 마케팅 활동도 계획 중이라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카트라이더>, 온라인 레이싱 붐 일으키다
본격적인 온라인 레이싱 게임에 불을 지핀 게임은 <시티레이서>보다는 1년 뒤 나온 넥슨의 <카트라이더>라고 봐야 옳다. 2004년 6월, 공개 테스트를 시작해 1개월 만에 동시 접속자 1만 명을 돌파했고, 8월 5만 명, 10월 10만 명을 넘어서며 2005년 2월에는 20만 명이라는 동시 접속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기록은 계속 이어져, 1년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월 60억 원이라는 매출을 달성하는 등 국내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카트라이더>는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를 제치고 PC방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등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다오’, ‘배찌’ 등 <크레이지 아케이드> 캐릭터들을 내세운 전략도 <카트라이더> 성공의 한 요인이었다. 게임 방식도 먼저 들어오는 사람을 가리는 스피드 대전 이외에도 깃발전이나 아이템전 등 오락적 요소가 짙은 시스템을 내세워 쉽고 빠르게 적응하도록 했다. 한편으로 시작부터 e스포츠에도 많은 공을 기울였다.

공개 테스트 시절부터 MBC 게임을 통해 ‘길드 최강자전’을 열었고, 이후에도 PC방 대회를 전국적으로 진행하며 기세를 몰아갔다. 2005년에는 온게임넷과 제휴를 맺고 <카트라이더> 리그를 열었는데,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여성부 리그가 열리기도 했다. <카트라이더> 리그는 여러 프로게이머들을 탄생시키며 차세대 e스포츠 재료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2009년 1월 열린 그랑프리 이후 넥슨에서 e스포츠 부서를 폐지하는 등 여러 이유로 리그 명맥이 끊기는 시련도 있었다. 1년 여 뒤인 2010년 4월부터 리그가 존속 중이다.
<카트라이더>의 성공은 여러 모로 의미를 지닌다. 게임의 태생이 <마리오 카트>와 같다보니 표절에 대한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했고, 동시에 <카트레이서>라는 중국판 <카트라이더>가 나오는 등 구설도 많았다.

국내 PC방과 마찰도 있었다. 초창기에는 PC방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후 PC방과 관계 설정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PC방 업주들이 시위를 벌이는 한편, 협회 차원에서 유사 레이싱 게임인 <콩콩 온라인>을 대체 게임으로 고려하는 등 감정싸움이 격했다.

이 밖에 PC방은 물론,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카트라이더>에 빠지는 게이머들이 늘어나자 <카트라이더>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심지어 <카트라이더> 실행을 금지한 회사도 등장할 정도였다.


▲곰TV컵 <카트라이더> 리그의 한 장면.


EA에서도 온라인 레이싱 게임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시티레이서>와 공동 이벤트를 진행하는 아트라스BX 레이싱 팀의 2011년 머신.


▲대부분의 ‘3세대 온라인 게임’은 기대와 달리 몰락했다.

기대 모은 3세대 레이싱 게임, 그러나
사실 <카트라이더> 이전부터 레이싱 게임의 온라인화는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가 뜨자 RTS 게임이 쏟아지고, <리니지>가 흥행하면서 MMORPG가 홍수를 이룬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른바 ‘포스트 카트라이더’를 외치는 후발 주자들이 속속 등장한 것. 이들은 MMORPG나 FPS 게임 같은 다른 장르와 융합을 시도하거나 이전보다 발전한 볼거리에 치중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이 시절 대표적인 게임으로 <스키드러쉬>, <고고씽>, <레이시티>, <아크로 엑스드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3세대 레이싱 게임이라고 정의할 만큼 새로운 바람을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도 이전 레이싱 게임들과 달리 그래픽이나 완성도 면에서도 충실해 기대가 컸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를 넘어선 게임이 없듯, 이들도 반짝 관심 뒤에 잊혔다. 그나마 리듬 게임과 결합을 시도한 <알투비트>나 <시티레이서>, MMORPG 요소를 섞은 <레이시티>를 빼면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게임에서 서비스한 <스키드러쉬>는 최근 단독 서비스로 전환해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FPS 게임과 결합한 <아크로 엑스트림>은 자취를 감췄다. <리니지> 성공 신화의 주역인 송재경이 제작한 <XL1>은 그나마 다른 레이싱 게임들과 궤를 달리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서비스를 중지했다.


새로운 성공 사례를 개척한 레이싱 게임 <테일즈런너>.


특유의 게임 시스템으로 교육용 온라인 게임의 이미지도 획득했다.

몰라줘도 괜찮아, 홀로 빛난 <테일즈런너>
<카트라이더> 이후 온라인 레이싱 게임의 성공 사례는 <카트라이더> 그늘에 가렸던 <테일즈런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게임은 한때 동시 접속자가 1000명 미만으로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지만,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면서 차근차근 인기를 쌓았다. 차별화는 맵 소재부터 달리했다. ‘해와 달’이나 ‘흥부와 놀부’, ‘복숭아 동자’, ‘개구리 왕자’ 등 국내외 전래동화에서 스토리를 따왔다. 덕분에 ‘전래동화를 소재로 삼은 비폭력 게임’이라고 언론에 소개되면서 호평을 얻기도 했다.

<테일즈런너>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달려라 영어왕’이나 ‘달려라 암산왕’ 같은 맵은 간단한 산수 문제나 초등학교 수준 영어 단어를 맞춰야 다음 트랙으로 전진할 수 있는 식이다. 어린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레 공부도 할 수 있어 에듀테인먼트(공부와 놀이를 합친) 콘텐츠로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교육용 온라인 게임’ 이미지를 굳힌 <테일즈런너>는 초등학생용 학습지와 학습만화 같은 2차 창작 부문으로도 사업 범위를 넓혔다. 그 결과, 게임 등장인물을 새긴 책들이 지난달까지 무려 150만 부나 팔렸다.

한편으로는 ‘대 운동회’ 같은 자체 e스포츠 대회를 열고, 개인 인터넷 방송국과 게임 방송국과 연계해 e스포츠 콘텐츠 생산에도 노력 중이다. 이를 통해 국제 e스포츠 행사인 ‘e스타즈 서울 2010’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테일즈런너>는 게임의 성공이 반드시 기존의 성공 사례를 답습하거나 우연한 기회로 편승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이는 사례다. 이는 ‘포스트 카트라이더’를 외친 다른 경쟁작들의 몰락과 충분히 대조된다.

#6  2011년, 진화하는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 같은 성공한 레이싱 게임들 뒤를 이어 신작 게임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여전히 실패도 거듭하고 있다. 하프파이프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프리즈 온 에어>는 전 연령층이 이용하는 게임인데,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게임에서 쓰는 하프파이프에 비유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다 결국 모습을 감췄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레이싱>이나 <뿌까 레이싱>처럼 인기 캐릭터들을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의 일환으로 쓴 사례도 있었으나 반짝하고 사라졌다.

기존에 성공한 게임 후속도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넥슨에서 내놓은 <에어라이더>는 <카트라이더> 후광을 입으며 공개 테스트 2주 만에 가입자 100만 명, 동시 접속자 2만 명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후 밸런스 문제나 차별화 실패 등의 이유로 각종 수치가 수직하락하면서 실패의 나락에 빠졌다.

꼭 아이유 때문은 아니야,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
이런 가운데 개발사들은 기존 성공작과 차별을 두면서 최신 유행 게임들과 접목을 시도했다. 예컨대 육성 방식이나 매니지먼트 게임과 결합한 것이 대표적 사례. 엔트리브의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는 경마라는 주제를 살린 레이싱 게임이다.
말과 교감하는 것은 물론, 다른 말과 교배해 얻은 망아지를 키워 자신만의 탈 것을 만드는 시스템은 특이하다. 다른 소재의 육성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콘텐츠라서 레이싱 게임 마니아는 물론, 육성 게임 마니아까지 끌어들이는 효과도 거뒀다. 여기에 인기가수 아이유를 모델로 쓰면서 연초에 등장한 게임들 중 연착륙에 성공한다.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는 말 형상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음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정식 서비스 이후에도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다만 동물 소재 레이싱 게임으로 먼저 나온 <허스키 익스프레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허스키 익스프레스>는 독특한 방식으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콘텐츠와 소홀한 유지보수로 인해 실패했다.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 역시 오랫동안 사랑 받기 위해서는 지금의 위상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한편, <프로야구 매니저> 등이 일으킨 매니지먼트 게임 붐을 타고 2011년 1월 등장한 <레이싱 매니저>는 매니지먼트 레이싱 웹 게임도 주목할 만하다.

이 게임은 F1 레이싱 팀 감독이 되어 팀을 관리하고 드라이버를 육성하는 방식이다. 4월 말 공개 테스트를 시작할 계획으로, 유명 모델을 게임 내에 등장시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레이싱 모델을 앞세우는 전략은 자칫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흐릴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그러나 레이싱 게임도 매니지먼트 게임 재료가 될 수 있을지 평가하는 최초의 시도이므로 여러 의미로 주목할 만한 게임이다.


<에어라이더>는 초반 기세와 달리 빠르게 추락해 안타까운 게임이다.


아이유를 전속 모델로 기용해 인기를 끈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


레이싱 게임에도 매니지먼트 바람이 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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