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마스터피스 -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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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마스터피스 - 시계
  • PC사랑
  • 승인 2014.03.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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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피자 한 판 시켜먹는 일이 가능한 시대다. 아마 스마트폰의 기능을 20년 전으로 되돌린다면 시계부터 세계지도까지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의 디지털화는 빠르고 거대하게 흘러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최고, 최대의 컴퓨터나 IT 산업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 혹자는 구식이라고, 혹자는 마스터피스라 부르는 ‘아날로그’의 세계다. 그 중에서도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지는 최고의 경지는 '손목시계'가 아닐까? 
먼 길을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자전거와 자동차를 거쳐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손쉽게 이동한다. 저녁 6시까지 역 앞 시계탑에 가야 만날 수 있었던 연인은 스마트폰 화상 통화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다. 달에 가면 떡 찧는 토끼가 두 마리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기자는 달에 성조기를 내건 미국의 우주인들을 보며 꿈을 접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직결된 모든 것들이 수작업에서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 매일 손에 쥐고 있는 컴퓨터 같은 스마트폰을 만들어 과거엔 상상으로 만족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영화 ‘아이언 맨’의 배틀 슈트가 미군에 의해 실존 전투 슈트로 개발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올 만큼, 온 세상은 디지털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나’를 대신하는 또다른 ‘나’를 뇌파로 조종하는 이야기의 영화 ‘써로게이트’도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그런 와중에도 온고지신의 정신에 입각해 과거의 낡은 체제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아무리 최신 기술과 최고의 성능을 가진 로봇이 달려든다 해도 이룰 수 없는 분야는 ‘다행히’ 아직 존재한다. 과학과 기계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의 손이 닿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물건들은 생각보다 많다. 제작 200년이 지나도 최고의 가치로 불리는 바이올린 ‘과르넬리 델 제수’가 그렇고, 조선시대에 광주에서 만들어진 백자 ‘철화용문항아리’가 그렇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물건들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 가치를 매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든 ‘예술’의 경지에까지 오른 것이 있다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질 수 없다 해서 쳐다도 보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 중 눈에 띈 ‘시계’가 그렇다. 단지 시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에서, 시계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경지가 있었다.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이 들고, 좁쌀보다 작은 부품이 조합되는 과정은 전문가의 그것이라 보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의 폭이 좁아져도, 이 분야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성벽처럼 느껴졌다.
 
명품을 넘어 명작의 반열에 오른 시계. IT 산업의 혁신을 주도한 애플이나 거대한 공룡 삼성전자도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 ‘Watch’가 아니라 ‘Timepiece’로 불리는 마스터피스에 대해 알아보고, 똑같은 시간 표시 기능인 스마트폰의 시계와 무엇이 다른지 느껴 보자.
 
 
손목시계의 의미, 시간이 전부가 아니다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세계 3대 시계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이 출시한 스네이크 컬렉션. 15만 달러.
 
스마트폰이 시간을 표시하는 것은 기기 자체에 내장된 것이 아니라 기기 주변의 통신망에서 주는 신호를 받는다. 단순히 시간만 알면 된다는 사람들에게는 1인 1전화 이상으로 보급된 현재 손목시계가 불필요하다. 그러나 남자가 착용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액세서리 중 하나인 손목시계는 단순히 시간 표시의 기능적 의미를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또한, 577년이 지나도 차이가 하루를 넘지 않는다는 IWC의 전설적인 시계 ‘포르투기즈’와 같이 기술의 정점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선물받았던 카시오 전자시계가 몇 달이 지나면 시간이 틀어져 다시 맞춰야 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명품’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시계들은 하루의 오차를 허용하는 기간이 보통 100년을 넘는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1개월, 43200분이 흐르는 동안의 오차가 1분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기계식 무브먼트이기에 ‘시계에 밥 준다’는 옛말처럼 정기적으로 용두를 돌려 밸런스 스프링을 감아줘야 하는 단점은 있다. 오차가 놀라울 정도로 적다고는 해도 밥을 주지 않아 시계가 멈춰버리면 별무소용이니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시계태엽부터 감아주는 버릇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런 귀찮음도 감수하면서 수많은 남자들이 명작 손목시계를 꿈꾸는 이유가 궁금하다. 기자 역시 시계는 시간을 볼 수 있으면 된다는 주의라서 굳이 별도의 시계를 가지고 싶진 않다. 패션 아이템으로 간주한다 해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자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앓느니 죽자는 심정으로 착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가끔 웹서핑을 하다 신기할 정도의 무브먼트를 뽐내는 시계들을 보고 있으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시계 자체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볼 수도 있다는 사람도 있으니, 예부터 내려오던 손목시계에 대한 ‘로망’은 아직 남아 있다고 보면 되겠다.
 
 
천 개 이상의 부품, 구입하려면 5년도 기다릴 수 있어

세계 최고, 최고가의 시계에는 적게는 500개, 많게는 1200개의 부품이 고도의 정밀 기술로 집약된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기계식 손목시계 하나를 제작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크게는 새끼손톱만 한 톱니바퀴부터 작게는 좁쌀보다 작은 부품까지 수백 개의 크고작은 부품들이 직경 5Cm 가량의 무브먼트에 모두 집적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위 브랜드들은 이 부품 집약 과정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뤄진다. 스위스의 시계 명가 ‘예거 르쿨트르’는 한 명의 워치메이커가 부품의 디자인부터 제작, 조립까지 모두 담당하기 때문에 하나를 만드는 데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일례로 가장 위대한 워치메이커로 불리는 필립 듀포의 2000년 작품 ‘심플리시티’는, 애초에 100개만 제작하려 했으나 그 해 바젤 페어에 공개한 뒤 폭발적인 반응으로 총 200개를 제작하게 됐다. 2000년 초부터 주문받아 제작을 시작한 심플리시티는 2012년 말이 돼서야 마지막 주문자의 시계가 완성됐다고 한다. 그 이전인 1992년에는 10년 전 제작한 복잡한 메커니즘의 회중시계를 손목시계 형태로 만들어 바젤 페어에서 기술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계를 만드는데 꼬박 10개월을 바쳤고, 이후에도 첫 작품을 포함해 5개만 만들었다.
 
 

명품 시계들은 스타 마케팅에도 빠지지 않는 요소 중 하나다.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과 친분을 맺은 예거 르쿨트르는 배트맨 시리즈 최종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개봉을 기념해 시계의 뒷면에 배트맨의 심벌인 박쥐 마크를 새긴 ‘그랑 리베르소 울트라씬 문 1931 에디션’을 출시했다. 리베르소 컬렉션은 영국의 폴로 경기에서 베젤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브먼트가 180° 회전하도록 제작된 시계다.
 
 
그들의 노력을 보라

예거 스쿨트르에서 만든 현존 최소(最少) 무브먼트 ‘칼리버 101’. 성냥개비만 한 굵기에 101개의 부품이 집약돼 있다. 1929년 세워진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혹자는 이런 명작 시계들을 ‘낭비’라 하기도 하고, 시간을 나타내 주는 기계에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거금을 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명품 시계 제작자들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린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솔직히, 기자도 반쯤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손목시계 하나에 수십억의 재산을 털어넣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엔 기가 차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시계에 장인의 혼을 불어넣고 전통을 이어가며 끊임없는 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금전적 가치를 넘어 그 자체로 전설이 된다. 시계 뿐 아니라 최초로 대중적 이미지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만든 애플의 故 스티브 잡스도 전설이고, C 언어를 개발해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반을 마련한 故 데니스 리치도 전설이다. 예거 르쿨트르의 워치메이커는 1929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브먼트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현재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끝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차가운 기계일 뿐이지만, 희소성이나 외형적인 가치보다는 그 안에 담긴 땀방울을 봐야 한다. 값싸고 좋은 신제품에 열광하는 것처럼 IT 업계에도 하이엔드 라인 제품들의 가치를 찾아 볼 때다.
 
 

독일의 시계 명가 ‘A. Lange & Sohne’(아 랑에 운트 죄네)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크로노그래프 모델 중 하나인 ‘Datograph’. 약 1억 원대.
 
 
 
‘Datograph’의 뒷면은 스켈레톡 백 처리가 돼 있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smart PC사랑 | 정환용 기자 maddenflower@ilovep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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