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 그 허무함에 대하여 (와우 2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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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그 허무함에 대하여 (와우 2번째 이야기)
  • PC사랑
  • 승인 2013.01.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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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공략기
 
몬스터 잡는 것보다 더한 노가다
업적, 그 허무함에 대하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 판다리아의 안개’를 즐기는 요소는 던전을 클리어하고 공격대에서 더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 말고도 굉장히 많다. 그 중에서도 ‘업적 시스템’의 압박은 아는 사람들은 치를 떨 정도로 게임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축제 시즌과 특별한 퀘스트 진행, 희귀한 몬스터 찾기까지, 집 떠났던 와우저들이 비슷한 시기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업적. 도대체 업적이 뭐길래?

정환용 기자
 
 
게임 플레이에는 정말 도움 안 되는 시스템
와우를 몇 시간 정도 해봤거나 잠시 동안 즐긴 정도의 게이머라면 업적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한다. 단축키 Y를 누르면 나타나는 업적 관련 내용들은 잠시 동안 살펴보면 게임 진행에는 큰 연관이 없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와우저들은 업적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설령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몇몇 업적의 보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문제는, 공격대 토벌을 가거나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한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업적에 목메는 와우저들이다. ‘대격변’ 시절의 기자 또한 어서 80레벨을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새로운 업적은 뭐가 나왔나’ 살펴보고 괜찮은 보상이나 전에 다 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면 체크해 두고 꼭 달성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와우의 모든 지역을 모두 돌아봐야 하는 ‘탐험’, 매년 돌아오는 12번의 축제 기간 동안 열심히 달려야 달성할 수 있는 ‘이벤트’, PvP와 종족간 전투에 혼을 빼앗길 정도로 매달리게 되는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등등 가짓수로 따지면 약 1800여 개의 업적들이 와우저들을 24시간 유혹하고 있다.
굳이 업적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면 ‘보상’이 있기 때문인데, 이 또한 게임과는 큰 관련이 없다. 모든 맵을 탐험한 자에게 ‘탐험가’라는 칭호를 이름 앞에 붙여주고, 간혹 희귀한 애완동물이나 탈것을 얻을 수 있는 업적도 있다.(웃기게도 탈 것 50개를 모아야 하는 ‘기병대장’ 업적의 보상이 ‘백색 원시비룡’이라는 탈 것이다.) 아마 실제로 자주 사용해야 하는 탈것이나 애완동물 등이 업적을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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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기자의 현재 업적 달성률을 공개한다. 고작 31%, 6천 점을 조금 넘긴 정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9천 점을 꼭 넘기고 말 것이다.
 
아이템보다 칭호가 좋은 ‘업적바보’
그런데 와우저들은 그 소박한 보상에 매달린다. 축제 업적처럼 자칫 때를 놓치면 무려 1년을 기다려 다음 축제를 기약해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모든 지역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현자’ 칭호와 에픽 아이템 ‘현자의 제복’을 주는 ‘현자’ 업적을 위해 만레벨을 달성하고 나서도 미처 지나지 못한 저레벨 지역에서 속칭 ‘노가다’를 하기도 한다.
그 시간에 공격대를 한 번 더 가면 그만큼 보스 몬스터에 대한 경험도 쌓이고 클리어하는 시간이 줄어들텐데도, 우리의 곰같은 와우저들은 그저 희귀한 칭호와 약간의 보상을 위해 매달 정액 결제를 하는 것이다.
한 때 가수 이소라의 와우 사랑이 TV에 비춰진 때가 있었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방영 초반에 이소라의 집을 촬영하던 장면에서 모니터에 비춰진 것은 익숙한 인터페이스의 와우 화면이었다. 이외에도 열렬한 와우 매니아로 공공연히 알려진 가수 은지원을 위해 블리자드에서는 그의 방송 캐릭터를 희화한 NPC ‘은초딩’을 게임 내에 배치하기도 했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의 유명 재벌 패리스 힐튼을 패러디한 NPC ‘해리스 필튼’은 게임 내에서도 명품 아이템을 판매해 게이머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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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와우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더 강력한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탐험가’ 업적을 위해서였다. 기자 같은 와우저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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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을 패러디한 NPC는 와우를 즐기며 볼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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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업적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잘 찾아보면 광고 카피, 유명 멘트들을 패러디한 재미있는 제목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어, 이런 게 있었어?”하고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 업적을 시작하는 계기라면, “하얗게 불태웠어...” 라며 게임 자체를 ‘접어’버리는 것 역시 업적을 멈추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업적에 대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을 건드린 블리자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유난히 강한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누구보다 강한 도전정신과 함께 ‘그 레벨에 잠이 오니’라는 웃지 못 할 PC방 간판까지 있을 만큼 승부욕까지 엄청나다.
비록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에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점점 높아지는 숫자에는 별 의미도 없지만, 우리는 그 숫자에 10점을 더하기 위해 수 시간 동안 PC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퀘스트 10개만 더 하면 업적 점수 10점이 더해지고, 두 군데만 더 열심히 탐험하면 대망의 탐험가 칭호를 얻을 수 있는데, 당신이라면 잠이 오겠는가? 물론 업적 시스템이 특정 게이머 층을 대상으로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의 특성에 매우 적합한 폐인양성 시스템의 대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업적의 내용이 단순히 ‘XX 아이템 100개 모으기’ 혹은 ‘OO 던전의 ** 몬스터 처치하기’처럼 단순했다면 지금처럼 업적을 향한 와우저들의 갈망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업적은 와우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콘텐츠와 연관되어 있다. 기본적인 레벨업과 각종 기술, 착용한 아이템 레벨부터 최고 난이도 공격대의 조건부 클리어까지 와우의 업적과 연관되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다. 하다못해 치료용 붕대를 수백 번 사용해도 업적이고, 퀘스트의 보상으로 골드를 얻어도 업적이고, 심지어 일정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하지 않고 살아남아도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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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업적에 대한 질답과 정보 검색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인의 승부근성, 정말 뛰어나다!
어쩌면 업적 자체에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 업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캐릭터가 얻을 수 있는 것에 주목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난이도가 높은 공격대의 경우 업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격대의 움직임이나 포지셔닝이 공략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모두 매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계적인 게임회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보스 몬스터도 다 잡았네? 그래도 너네 게임 떠나면 안 돼. 이거라도 해’ 식으로 만든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과제에 성공했다는 자신감과 만족감이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확장팩이 서비스를 시작한 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업적에 최초로 도달하면 같은 업적의 이름 앞에 ‘서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세 번째 확장팩 ‘대격변’ 시절 국내 공격대 ‘즐거운 공격대’가 데스윙 하드 모드를 클리어했을 때 그들이 얻은 것은 무려 ‘World First Kill’(세계최초)였다. 천만 명이 넘는 세계의 와우저들을 모두 제치고 세계 최초의 수식어를 얻었을 때의 쾌감은 과연 어떨까?
 
 
과유불급, 적당히 해야 정신건강에 이로워
차근차근 살펴보면 재미있는 업적들이 많다. 반드시 모든 업적을 수행하리란 법은 없다. 모든 업적 시스템은 공격대 던전, 퀘스트 등의 게임 진행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다만 높은 업적 점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이득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감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한 번쯤 도전하고 싶다면 애완동물, 탈것 등 실질적인 보상에 눈이 머는 것은 자제하도록. 그런 보상이 있는 업적일수록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커진다.
레벨업과 함께 업적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한 지역에서 주어지는 퀘스트를 모두 수행하는 지역 퀘스트 업적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동시에 지도가 밝혀지지 않은 지역을 탐험하는 ‘탐험가’ 업적 또한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업적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다.(다만 그만큼의 시간을 빼앗기게 되겠지) 주기적으로 열리는 축제 기간에만 달성할 수 있는 업적도 도전해 보자.
꾸준히 점수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3~4천 점이 쌓인 캐릭터를 보며 흐뭇해질 것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달성하는 보너스같은 업적도 있으니 생각보다 점수 쌓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점수다 7천 점을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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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을 달성했을 때의 저 광채를 보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당신도 어서 도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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