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매체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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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매체 변천사
  • PC사랑
  • 승인 2012.11.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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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매체 큰 용량, 어떻게 진화했을까?
저장매체 변천사
 

 
286 컴퓨터가 보급되며 ‘저장’이라는 개념을 인식시켜 준 것은 5.25인치 디스켓이었다. 2개의 디스크 드라이브 중 A 드라이브에 부팅 디스켓을 넣고 B 드라이브에 GW Basic 소프트웨어 디스켓을 넣고 컴퓨터 부팅 버튼을 누른 것이 기자와 컴퓨터의 첫 만남이었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은 16GB의 메모리 속에 수백 곡의 음악과 영화 파일을 저장시켜 둔 휴대폰이 보편화됐다.
 
정환용 기자
 
 
개념원리 - ‘메모리’란 이런 것이다
 
‘메모리’(memory)란 단어의 단순한 의미는 ‘기억하다’이다. 이것을 PC에 적용하면 ‘무엇을 기억하는가’에 따라 크게 주 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로 구분할 수 있다. 주 기억장치는 프로그램, 입·출력 자료, 실행된 작업에 대한 중간 계산결과 등을 기억하고, 보조 기억장치는 외부에서 주 기억장치의 한정된 기억 용량을 보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RAM과 ROM이 주 기억장치, HDD와 플래시 메모리 등 주 기억장치를 제외한 모든 기억장치는 보조 기억장치라고 칭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는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다. 컴퓨터의 기본 구조는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트랜지스터로 설계돼 있고, 트랜지스터는 전기의 흐름 여부에 따라 0과 1로 구분해 모든 작업을 처리한다. 저장장치도 마찬가지로 ‘데이터’라고 부르는 모든 자료들은 0과 1, 단 두 가지 숫자만으로 저장된다. 우리가 컴퓨터로 감상하는 음악이나 동영상, 그림 파일이나 프로그램까지 모두 그 뿌리로 들어가 보면 0과 1의 조합이라고 보면 된다.
알기 쉽게 그림 파일로 알아보자. 아무 그림 파일을 이미지 뷰어 프로그램으로 실행한 뒤 ‘+’ 키를 신나게 눌러보자.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때까지 크게 키워 보면 <그림 1>의 이미지가 <그림 2>까지 확대된다. 멀리서 보면 그냥 그림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다양한 컬러의 네모 픽셀의 조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컴퓨터는 해당 픽셀의 위치와 색 정보를 분석해 jpg 확장자 안에서 기억하도록 만든다. 가로 200, 세로 200의 위치에 있는 픽셀은 붉은색인지 푸른색인지 0과 1로 판단하고, 그렇게 모든 픽셀의 위치와 색을 지정하고 그림 파일로 저장하면 <그림 1>과 같은 사진 파일이 모니터로 출력되는 것이다.
<그림 1> 사진 파일의 원본.

 
 
<그림 2> 1920 x 1200 해상도의 화면에서 <그림 1>을 최대한 확대한 이미지
 
모든 데이터는 이와 같은 원리로 기억장치에 저장된다. 전류를 ‘보내느냐’(1), ‘마느냐’(0)처럼 전기 신호의 유무로 모든 작업을 소화하는 것이 기억장치의 데이터 기억 원리이다. 어떤가? 컴퓨터는 숫자 0과 1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컴퓨터가 하찮아 보이는가? 다른 방향에서 보면, 0과 1만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잊지 말자. 컴퓨터는 분명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컴퓨터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러니 컴퓨터보다 똑똑하지 못하다고 해서 주눅들지 말고 편안히 소파에 앉아 주스라도 한 잔 하면서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D의 의지, 그것이 알고싶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중요한 키워드 ‘D의 의지’만큼이나 저장매체에서의 D 또한 중요하다. 편하게 ‘디스크’(디스켓)라 부르면 대부분 저장장치로 알아듣긴 하지만, 용어 구분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CD, DVD, BD 등 원형의 플래터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매체는 ‘Disk’이다. 그리고 이 저장매체들을 PC에서 읽어들이는 장치를 ‘Drive’라고 한다.
HDD는 저장용 플래터와 데이터를 PC에 전송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Hard Disk Drive로 부른다. 최근 빠른 속도로 인기가 높은 SSD(Solid State Drive)는 HDD처럼 플래터가 회전하며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래시 메모리 형태의 저장장치에 전기 신호를 이용해 기록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물리적인 동작이 없어 그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점차 HDD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가수 윤하의 4집 CD와 린킨 파크의 텍사스 공연 DVD, 그리고 영화 ‘다크 나이트’의 블루레이 디스크를 꺼내 봤다. 색은 다르지만 지름이나 두께 등 크기는 셋 모두 똑같다. 다른 것은 용량. CD는 700MB, 듀얼 레이어 DVD는 8.5GB, 그리고 싱글 레이어 BD는 무려 25GB이다. 어떻게 같은 크기의 매체에서 30배가 넘는 차이를 보일 수 있을까?
원형 디스크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법은 원형으로 가공된 판 위에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음성이나 영상의 정보를 디지털 부호로 전환해 판에 기록하면, 기록 레이저보다 약한 레이저를 쏴 판의 반사광을 인지해 기록된 신호를 출력 신호로 전환해 준다. 이 매체들의 용량 차이는 바로 데이터를 기록하는 레이저의 크기에 따라 같은 표면적에 더 작고 많은 부호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 가장 큰 용량을 기록할 수 있는 BD는 405nm 레이저를 사용해 데이터 부호를 가장 작게 입력할 수 있다. 이 레이저의 색이 푸른색이었기에 타이틀의 명칭이 ‘Blu-ray’가 된 것이다.
▲ 총 용량 50GB로 현존 최대용량의 디스크 ‘블루레이 더블레이어’.
 
 
 
이처럼 같은 크기의 플랫폼에 더 많은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은 제조 공정의 발전으로 인한 ‘소형화’가 핵심이다. 같은 크기의 HDD라고 해도, 네 개의 플래터에 20MB씩 할당돼 총 용량이 80MB에 불과한 제품부터(기자가 가장 먼저 사용한 HDD가 80MB 용량이었다), 1TB 기록이 가능한 플래터 세 장으로 총 3TB의 대용량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차이가 난다.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플래시 메모리도 마찬가지. 결국 제조 공정이 얼마나 섬세해지느냐에 따라 같은 값에 몸빼바지인지, 다홍치마인지 결정되는 것이다.

 


1톤에서 3.5g, 5MB에서 128GB, 73억 배의 발전사
8GB 용량의 USB 메모리가 흔해진 지금, 최초의 HDD가 탑재된 컴퓨터가 1톤이 넘었었다는 사실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린다. 첫 HDD부터 가장 최근 출시된 3TB HDD까지, CD에서 블루레이까지, 32MB mp3 플레이어에서 32GB 스마트폰까지. 5MB의 1톤 HDD에서 128GB의 2.5g USB메모리까지. 무려 7,313,920,000배 이상의 놀라운 발전을 거쳐 온 저장매체의 탄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해 봤다.
 

 
1956년: 최초의 저장장치 장착 컴퓨터 탄생
IBM이 1956년 최초의 하드디스크 ‘305 RAMAC’를 개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5MB의 용량을 저장했던 RAMAC의 무게는 무려 1톤이었다. 플래터에 전기 신호를 이용한 데이터 기록 기본 구조는 같지만,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200L 드럼통보다 크고 플래터 하나가 자동차 타이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거대한데도, 이 장치에 저장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 따져보면 3~4분 정도 길이의 음악 파일 하나뿐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는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콜럼버스의 달걀도 처음 세우는 것이 어려웠다. 누군가가 처음 발명한 물건이 공개되고 여기에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과학의 힘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 ‘발전’이 아닌가. 과학의 발전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 우리가 언제나 손쉽게 컴퓨터로 실감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무식하게 생긴 HDD가 발명됐기에 가능한 일인 것을 알아야 한다.

 
 
누가 보면 대형 발전기인 줄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최초의 HDD.
 

 
1971년: 최초의 플로피디스크
90년대에 가장 많이 사용됐던 ‘플로피 디스켓’은 자성체로 구성된 원형의 디스크가 플라스틱 재킷에 싸여 있는 형태였다. IBM에서 최초로 양산을 시작한 1.2MB 용량의 8인치부터 5.25인치, 3.5인치 등 약 5가지 형태가 존재했으나 이중 5.25인치와 3.5인치가 가장 많이 사용됐다. 플로피 디스크는 단면만 사용하고 한 면에 77개의 고정된 기억용량 트랙을 가지고 있다. 당시 다른 매체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고 부피가 작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던 휴대용 저장매체였다.
어렸을 때 컴퓨터 학원에서 5.25인치 디스켓 10장 세트를 선물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기자의 집에 약 100여 장의 디스켓들이 남아 있는데, 뒤적여 보니 어렸을 때 즐겼던 DOS 게임 정품 디스크나 부팅 디스크가 몇 장이나 보여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워낙 오래됐고 낡아서 5.25인치 드라이브를 구해도 읽을 수는 없겠지만, 한 때 기자를 컴퓨터의 세계에 끌어들였던 것인 만큼 아직도 서랍 한 칸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역사가 되기 전까지 3.5인치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된 5.25인치 디스켓. 8인치 디스켓과 크기 차이가 많이 난다.
 


1982년: 최초의 CD
지금은 인터넷에서 50장 짜리 공CD를 불과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지만, 처음 CD가 등장했을 때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큰 발명이었다.
CD의 등장은 저장장치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감상 면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필립스와 소니가 기술력을 합쳐 만든 현재 CD의 표준 규격 CD-DA(compact disk - digital audio)는 세계적인 대세였던 LP의 자리를 물려받아 음악감상의 표준이 되었다. 최초의 음악 CD는 독일의 Polydor Pressing Operations에서 발매된 클래식 연주 음반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고 거장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수록되었다.
CD의 등장 이후, 소니에서 최초로 개발한 휴대용 CD플레이어 ‘워크맨’은, 소수이지만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휴대용 음악감상 기기의 명작이다. 현재에는 물리적 동작이 없는 파일 재생 방식의 mp3 플레이어, 혹은 mp3 재생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폰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인 물건인 것은 틀림없다. 이후 필립스와 소니가 기술 개발을 거듭해 1999년 월등히 좋은 음질을 수록할 수 있는 SACD(Super Audio Compact Disk)를 개발했지만, 전용 플레이어가 있어야 제 음질을 낸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비싼 제작비 때문에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조금 전에 권한 주스가 바닥나지 않았는가? 한 잔 더 해도 좋다.)

 
 
 

 
1980년: 최초의 개인 PC용 HDD
저장장치 전문 기업 씨게이트는 1980년 최초로 개인용 PC에 장착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HDD ‘ST-56’을 개발했다. 5.25인치의 CD롬 드라이브 2개를 겹쳐 놓은 정도의 크기에 용량은 5MB였다. 같은 용량을 가지면서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것이 대단하다. 이를 계기로 기술이 발전하고 제조 공정이 점점 세밀화되며 HDD의 크기가 현재의 3.5인치 크기로 규격화됐고, 하나의 플래터에 기록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발매된 ST-225는 두 개의 플래터에 각 10MB씩 총 20MB의 대용량(?)을 자랑하기도 했다.
 

 
 
최초의 외장 하드디스크라는 견해가 가장 많은 애플의 프로파일(ProFile).

 
1983년: 최초의 외장하드 애플 ‘프로파일’, 5MB, 비디오 한 대 크기
휴대용 외장 하드디스크의 개념은 씨게이트의 5.25인치 하드디스크와 애플의 저장장치가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애플 자체에서 현재의 외장하드 개념을 만든 것은 아니고, 씨게이트의 소형 하드디스크를 수용한 애플이 외장형 저장장치로 사용할 수 있는 케이스에 하드디스크를 장착해 만든 것이 최초의 외장하드로 분류되는 ‘프로파일’이다. ST-56이 장착된 프로파일의 용량은 5MB, 크기는 가정용 비디오 재생기 크기 정도였다.
 


1989년: NAND 플래시 usb 메모리
1989년 도시바가 ISSCC에서 발표한 NAND 플래시는 이전에 개발된 NOR 플래시에 비해 읽기와 삭제 시간이 더 빠르고 집적도가 높았다. 제작비도 적게 들고 특히 NOR 방식에 비해 10배 이상의 강한 내구성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입·출력 인터페이스는 자료에 대해 순차적인 접근만을 지원하기 때문에 PC 메모리로는 역부족이었다. 대신 별도의 작은 저장장치가 필요한 다양한 기기에 활용됐고, 스마트 미디어에 장착된 첫 NAND 기반 이동형 포맷을 필두로 MMC, 메모리 스틱, SD카드, CF카드 등 많은 플래시 메모리 타입의 저장장치에 사용되고 있다.
▲ 플래시 메모리의 전성시대를 선언한 NAND 플래시 메모리.
 

 
1997년: 최초의 mp3 플레이어
 
정말 통탄할 일이다.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가 국산이었다는 것을 알면 말이다.
 
1997년 최초로 mp3 파일을 재생하는 휴대용 플레이어가 한국에서 개발됐다. ‘디지털 캐스트’의 황정하 씨를 비롯한 젊은 브레인들은 최초로 mp3 파일을 휴대하며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개발했다. 당시 새한미디어에서는 mp3 플레이어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데, ‘특허권 공동소유’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일단 특허권을 소유해 마케팅과 유통을 시작한 새한은 디지털 캐스트의 이름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들의 작품인 것처럼 거짓말로 일관된 마케팅을 펼쳤고, 곧이어 사명을 ‘엠피맨’으로 바꾼 뒤 최초의 mp3 플레이어 ‘F-10’을 출시했다.
황정하 씨는 버티지 못하고 새한과 결별했고, 상황이 어려운 와중에 미국의 다이아몬드 社에서 인수 제의를 받았고, 새한과 다른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리오 300’이라는 새로운 mp3 플레이어를 만들게 됐다. 곧이어 기존의 기능에 USB 포트를 추가한 ‘리오 500’은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점에 원천기술이 없이 특허권만 가지고 장사하던 새한은 기술력에 밀려 국내에서 특허권 분쟁만을 계속하다 아이리버로 매각되고 만다. 함께 넘어간 특허권 반쪽마저 미국에 매각되며 대한민국의 mp3 특허권이 미국에 모두 팔려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13억대 이상의 mp3 플레이어가 팔렸다. 로열티만 해도 약 27억 달러를 벌 수 있었으나, 치졸한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특허권을 내다판 국내 기업들은, 이제 오히려 mp3 플레이어에 대한 로열티를 미국에 갖다바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 원천기술에 대한 중요성은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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