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3] 돌아온 악마가 극복해야 할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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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3] 돌아온 악마가 극복해야 할 네 가지
  • PC사랑
  • 승인 2012.05.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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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의 적은 디아블로<디아블로 3>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으로 디아블로 시리즈를 꼽은 필자의 말을 이상하게 들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디아블로 3>이 주목 받는 이유 중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게임이 디아블로 시리즈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디아블로 3>에 있어서 디아블로 시리즈를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적잖은 이들은 <디아블로 3>과 같이 안정된 인지도를 배경으로 가진 게임이라면 무언가를 극복하기보다는 전작의 느낌을 잘 살려 주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만 유지해도 흥행은 떼어놓은 당상이라 생각할 것이다.

블리자드 게임에서 나온 대사처럼, 게임 시장에서는 '영원히 지배하는 왕' 은 없다. 후속작의 부담이라면 새로움을 보여주고, 전작보다 높은 재미를 제공해야 한다. <디아블로> 출시 이후 <디아블로 2>가 수 년 만에 나왔을 때 두 배 이상의 흥행을 거둔 것은 <디아블로 2>가 전작의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재미와 게임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디아블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디아블로밖에 없다' 라고 칭송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별개의 게임이라 하더라도 액션 RPG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게 되면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게임 중 하나가 바로 디아블로 시리즈인데, 디아블로 시리즈의 이름을 달고 나온 <디아블로 3>이 이전의 디아블로 시리즈조차 극복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하다. 12년 동안 발전해 온 게임 기술은 물론이고, 그 동안 점점 높은 경지에 이른 게이머들의 만족도와 기대감, 그리고 눈높이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러면 과연 지금까지 공개된 <디아블로 3>의 모습에서는 디아블로 시리즈를 극복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 베타 버전만으로 섣부른 판단은 어렵겠지만, 일단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준비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액션 RPG다. 그러나 디아블로 시리즈의 전작들을 잘 살펴보면 실시간 액션을 표방한 게임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점을 까먹는 흐름들이 곳곳에 있었다. 가령 임무 수행 시 NPC들이 말하는 대사들이 스크롤을 내릴 방법도 없이 길게 늘어지거나, 임무 수행 또는 악마 사냥 도중에 죽어서 시체를 찾으러 가야 할 때에는 디아블로의 장점인 실시간 액션이 끊기게 된다. NPC의 대사는 건너 뛰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만, 죽었을 때 시체를 찾아야 하는 수고는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공백이 생기는 시간을 강요 받았던 전작에 비해, 체크 포인트 시스템이 도입된 <디아블로 3>에서는 더 이상 시체를 찾으러 갈 필요도 없고, 액션을 멈출 필요도 없다. 사망 시 아이템의 내구도를 10% 잃는 페널티가 기본적으로 생긴 대신, 가장 나중에 지나갔던 체크 포인트에서 약간의 정비만 거치면 다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액션'이라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장점이 더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또 다른 부분은 성장 시스템이 간편해진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디아블로 3>에서는 능력치나 스킬은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자동으로 부여되며, 아이템에서도 특정 능력치에 따라 착용 가능여부가 가려지는 것을 방지하여 레벨과 직업만 아이템 착용의 제한 조건으로 남도록 만들었다. 다만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 수에 제한이 있고 캐릭터의 고유 특성과 룬을 활용해 부여할 수 있는 스킬의 특성에 따라 캐릭터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게 구분된다.

전작에서는 낮은 레벨의 용병을 고용했을 때 쉽게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거나 새로 용병을 키우기 위해 낮은 레벨의 필드를 돌아다녀야 했지만 <디아블로 3>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싱글 플레이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추종자는 게이머의 레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지므로 새로이 육성하기 위해 낮은 레벨 지역으로 다시 갈 필요도 없으며, 전투에서 쓰러져도 일정 기간 동안 무력화될 뿐이어서 일일이 부활 비용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하나의 계정에서 생성된 모든 캐릭터와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창고도 생기고 경매장에서도 아이템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템도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이며, 다른 캐릭터를 키우는 일도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디아블로 시리즈 하면 으레 가졌던 고정관념인 '물약 게임' 이라는 양상도 <디아블로 3>에서는 거의 사장될 것으로 보인다. 포션에 재사용 시간이 붙었고 가격도 비싸졌기 때문에 전작들처럼 여러 병의 물약을 한 번에 마셔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악마들을 처치해 얻을 수 있는 피구슬을 터치하여 체력을 실시간으로 회복할 수 있으며 보스 몬스터 공략 시에는 부하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일정량 이상 HP를 깎거나, 방어를 무력화시키면 피구슬이 나오게 된다. 수동적으로 물약에 의존하는 대신 역동적인 전투에 익숙해진 게이머들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므로 당연히 능동적인 액션이 필요하게 된다.

전투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변화는 물약 시스템 말고도 또 있다. 파괴할 수 있는 구조물들을 연달아 파괴하거나 악마들을 연달아 처치하면 보너스 경험치가 주어지고, 구조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경험치를 획득하거나 돈, 아이템을 얻는 것 이외에 악마들에게 간접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기껏해야 독 포션이나 폭발 포션 혹은 어쌔신의 트랩 등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던 전작과는 달리 <디아블로 3>에서는 벽을 받치는 지지대를 파괴하거나, 샹들리에 줄을 끊어서 악마들에게 떨어뜨리는 등 좀더 전략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다. 캐릭터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투 자원도 전작처럼 모든 직업군이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군의 성격과 전투 방식에 맞는 분노, 공력, 비전력 등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역동적 전투를 유도한다.
 
이렇듯 <디아블로 3>은 게임 내적으로는 간편함을 통해 기다림을 최소화시키고, 또한 역동적인 게임 진행을 위한 여러 장치들을 충실히 배치해 놓았다. 거기에 랜덤 시스템으로 디자인되는 아이템과 던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워질 예정이다. 그렇기에 <디아블로 3>이 기존의 디아블로 시리즈를 극복할 만한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안심할 수는 없다. 점수를 깎을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적어도 세 가지는 있기 때문이다. 일단 블리자드의 '현지화 정책'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물론 한글화를 비롯한 블리자드의 현지화는 전작의 영어 명칭에 익숙한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배척 받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예를 살펴 보면 지금은 훌륭하다고 칭찬받고 있는 현지화도 발표하는 족족 반대에 부딪친 적이 있다. 작년에 <스타크래프트 2>가 그랬고,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WOW>의 국내 서비스를 진행할 때에는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즐겨 온 게이머들은 <WOW>의 현지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디아블로 3> 때도 마찬가지다. <디아블로 2> 때와 비교해 전설적인 고유명사들이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은 당연히 현지화에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블리자드는 의견을 두루 수렴하는 자세를 보이며 반발을 최소화하고는 있지만, 현지화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실제로 게임이 나왔을 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품질을 보여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한글화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면, 게임 구동 방식의 변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누구나 불편해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디아블로 2>까지만 해도 디아블로 시리즈는 게임을 다운로드 받고 온ㆍ오프라인이든 관계 없이 게임을 실행하면 되었지만 <디아블로 3>은 싱글 플레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배틀넷 계정을 통해 온라인에서만 게임을 즐겨야 한다. 아무리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다 해도, 클릭만 해서 금방 실행시킬 수 있었고,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도 적당히 어둠의 경로로 즐길 수 있었던 때와는 달리 무조건 배틀넷 계정에 가입해야 하는 것은 정당성 차원을 떠나 분명히 불편하다. 물론 새로운 배틀넷 계정 통합을 통해 블리자드의 게임들이 통합되는 상황에서 <디아블로 3> 역시 그 체계 안에 소속되어야 하겠고, 하드코어 모드 등에서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등의 부정행위를 가급적 방지하기 위해서도 이런 조치는 필요하지만 그런 부분을 생각한다 해도 시작 자체에서 번거로움을 주는
것은 큰 위험 요소다.

마지막 위험 요소는 콘텐츠의 문제다. 게이머들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콘텐츠의 소비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더욱이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이미 '끝이 없는' 온라인 게임에 익숙하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다른 패키지 게임에 비해 반복할 수 있는 콘텐츠, 당위성, 목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반영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만큼 콘텐츠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패키지 게임의 특성상 확장팩으로 제공되는 콘텐츠도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업데이트를 통해 제공되는 추가 콘텐츠도 온라인 게임보다 많을 지는 미지수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한계를 벌충해 줄 것으로 보이는 투기장 시스템의 업데이트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당초 <디아블로 3>에 도입될 투기장 시스템은 전작들에는 없었던 전문적 PvP 요소였기에 게이머들의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출시를 앞두고 투기장 콘텐츠는 블리자드에서 지향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추후 패치를 통해 지원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 따라서 PvP 시스템이 배제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게이머들이 누릴 수 있는 콘텐츠도 줄어들고, 기대감도 그만큼 줄어든다. 정식 출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블리자드가 투기장 시스템을 빨리 업데이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12년 전, <디아블로 2>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전작의 판매량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리니지> 등의 온라인 게임이 폭발적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디아블로 2>가 흥행할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패키지 게임 시장은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PC방 역시 <디아블로 2>의 패키지를 앞다투어 구매하였기 때문에 <디아블로 2>는 대한민국에서 백만 단위를 훌쩍 넘는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법복제 및 불법공유, 게임 전문지의 번들 경쟁, <마그나카르타>, <천랑열전> 등을 비롯한 대한민국 간판 패키지 게임들의 완성도 문제 등을 비롯한 여러 부정적 요인들로 인해 패키지 게임 시장은 2000년을 전후하여 급격하게 망가졌다.

결국 대한민국의 패키지 PC 게임 시장은 붕괴되어 출시되는 패키지 PC 게임 타이틀의 수도 크게 줄었고, 마니아들의 호응을 열렬히 얻거나 유행에 편승한 극히 일부의 패키지 게임을 제외하고는 미미한 판매고만을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의미 있는 시장이 거의 남지 않은 패키지 PC 게임 시장에 <디아블로 3>이 등장하고 난 뒤, 그에 대한 호응은 <문명 5> 등과 비교해도 규모나 열기 면에서 분명히 다른 수준이다. 지금의 패키지 PC 게임들이 흥행한다 해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떠들썩해지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면, <디아블로 3>은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호응과 기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이들은 <디아블로 3>으로 인해 패키지 게임 시장에 12년 전과 같은 뜨거운 열기가 다시 몰아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게임 시장이 다변화되고 온라인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언뜻 보기에는 과거의 열기보다 지금 시장의 움직임이 그다지 뜨겁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게이머들은 <디아블로 3>의
여러 움직임에 대하여 각자의 기호에 따라 충실히 반응하고 있다. 디지털 다운로드 판매로 구매하려는 게이머가 있는 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정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는 게이머들의 성향 역시 그에 맞게 다변화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과거와는 달리 게이머들의 소비 패턴과 성향이 다양해지고 패키지 게임을 PC방에서 사실상 구입하지 않게 된 지금, 과거의 백만 단위에 달하는 패키지 게임 판매량을 들이대며 성공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상 부적절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게이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일부 전문가 집단까지도 다시는 기록할 수 없는 <스타크래프트>의 판매고를 마치 대한민국 게임 시장의 진정한 성과나 지표처럼 선전하고 있고, 그러한 판매고가 <스타크래프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며 <디아블로 3>의 성공 기준을 극도로 높여 잡고 있다. 그런 방향에서 생각하면, <디아블로 3>은 너무 잘난 게임들을 형님(?)으로 둔 덕에 고정관념의 폐해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시장에 <디아블로 3>으로 다시 도전장을 내민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의 유통 과정에서 보였던 다소 미진한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간 문제를 보였던 패키지 유통과 PC방 유통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해당 부문에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국내 업체인 손오공 및 CJ E&M과 계약을 맺은 부분에서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다양한 부류의 게이머들이 가진 디지털 다운로드와 패키지 이용, PC방 이용 등의 다양한 소비 패턴에 특화된 각각의 전문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은 그만큼 게임의 판촉 활동에 있어서 효율적인 업무 분화가 가능한 환경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2> 때에 패키지 판매와 가격 정책에서 아쉬움을 준 것과는 달리 패키지를 처음부터 판매하기로 정하고 가격을 5만 5000원으로 책정한 것도 환영 받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2> 때보다 싼 가격이기도 하고, 12년 전에 <디아블로 2>를 판매하던 가격과 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블리자드 게임최초로 대한민국에서 한정 소장판(Collector's Edition)패키지를 정식 유통하기로 한 것 역시 마니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작년의 아쉬움이 있기에 패키지와 온라인은 물론, 디지털 다운로드와 한정판 마니아들까지 챙기는 블리자드의 전략이 12년 동안 변화한 게이머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년 전의 전략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움직임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상업 콘텐츠이고, 그 때문에 기존 게임들과의 경쟁은 물론 비슷한 시기에 새로 등장하는 게임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비단 <디아블로 3> 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게임들 모두가 그런 경쟁 선상에 놓이게 되지만, 게임의 규모나 장르, 그리고 기대 받는 정도에 따라 거쳐야 하는 경쟁의 강도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디아블로 3>이 거쳐야 하는 경쟁의 강도와 크기는 그 어느 게임보다 치열하다. 아마도 <디아블로 3>의 난이도로 생각하자면 일반, 악몽, 지옥, 불지옥 중 당연히 불지옥급에 해당하지 않을까.

<디아블로 3>의 경쟁 대상이 되는 게임들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주요 게임들을 살펴보면 우선 시장에 이미 진입해 있는 게임들로는 <아이온>을 필두로 <WOW>와의 팀킬, <리니지> 시리즈, <테라>, <던전 앤 파이터> 등의 RPG들이 있고 전략 게임으로는 새로이 시장 지배적 게임으로 떠오른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3> 등이 있다. 그리고 <디아블로 3>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는 게임들 중 직접적 경쟁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게임들은 먼저 출시되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리프트>와 역시 상반기 런칭을 앞두고 있는 <블레이드 앤 소울>, <아키에이지>, <히어로즈 오브 뉴어스> 등으로 추측되며 이들 말고도 크고 작은 고정 팬들을 가진 숱한 게임들이 모두 경쟁 대상이다.

그러면 이런 게임들 사이에서 경쟁을 펼치게 될 <디아블로 3>의 '맞상대' 나 '닮은꼴 게임' 은 무엇이며, 그 경쟁에서 다른 게임들에 비해 <디아블로 3>이 가진 경쟁력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나 수많은 기존 게임들과 새로 등장하는 대작 게임들의 면면 속에서 <디아블로 3>의 맞상대나, 닮은꼴 게임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나마 대한민국 게임들 중 최고의 기대작인 <블레이드 앤 소울>을 <디아블로 3>과 같이 비교하는 일이 빈번한 편이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비교는 할 수 있되 닮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블레이드 앤 소울>과 디아블로를 비교한다 해도 두 게임은 동일한 포지션의 게임으로 취급되기보다 RPG에 속하지만 영역이 구분된 게임이기 때문에 서로의 시장을 침범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디아블로 3>이 가진 또 다른 경쟁력은 바로 다른 게임에 비해 '경제적' 이라는 것이다. <디아블로 3>은 패키지 게임이므로 처음 구입할 때 외에는 추가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이른바 '무료 게임' 이 넘쳐나는 요즈음, 패키지 게임이라서 가지는 경쟁력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다들 알다시피 온라인 게임에서의 무료 게임이 정말 무료가 아니라 '부분 유료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디아블로 3>과 경쟁하는 다른 RPG들이 정액제 게임이나 부분 유료화 게임이기에 지속적 비용이 드는 반면 패키지 PC게임인 <디아블로 3>은 그렇지 않으므로, 다른 온라인 RPG들에 비해 분명한 경제적인 경쟁력에서 비교 우위를 안고 출발할 수 있다.

패키지 게임이 온라인 게임에 비해 경제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부분도, 그 게임이 '가벼운 게임' 으로 인식되면 도리어 해가 된다. 사람들이 게임을 선택함에 있어 경제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그 게임에서 지니게 되는 가치 그 자체다. 무료로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해서 모든 게임이 성공하지 않으며, 쉽게 얻은 가치는 쉽게 취급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다. <디아블로 3>이 아니라 그보다 더 발전된 게임이 나온다 해도, 그 게임이 어느 순간에 게이머들을 가볍게 여기게 되고 게임 내에서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의 가치가 가벼워지면 '무료' 나 '추가 비용 없음' 과 같은 경제적 경쟁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디아블로 시리즈와 같은 게임이 디아블로 밖에 없다는 통념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고, 대한민국 게이머들 중 가장 많이 즐기는 장르가 RPG이므로 많은 게이머들과 상당 수의 전문가들은 <디아블로3>이 게임 시장 속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만 인정 받아도 시장에 안착할 확률은 높다고 보고 있다. 아마 다른 게임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미래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디아블로3>에 기대를 거는 이들 중 상당수는 마치 과거의 <디아블로 2>나 <스타크래프트>처럼, <WOW>나 <서든어택>처럼, 그리고 지금의 <아이온>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기존 게임들을 물리치고 시장지배적 게임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IMF 사태 등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고난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 유흥거리들이 대부분 제한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고, 때마침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PC방 산업과 이를 중심으로 막 발전하기 시작한 콘텐츠인 PC 게임 산업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었다.

그 이후 PC방은 오랜 기간 동안 양적으로 성장했고 게임산업 역시 매해 비약적인 발전 했으나, 그러나 PC게임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게임 인구도 엄청나게 늘어나는 등 양적 성장이 이루어진 반면, 그렇게 발전이 이루어진 12년 동안 게임에 대해 바닥에 깔려 있는 인식이 변한 것은 거의 없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은 과거에 아케이드 게임장, 즉 '오락실' 을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덮어놓고 막거나 가정 및 학교에서 유해업소 취급하던 시기에서 조금도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편견 속에서 게임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날로 고착화되었고 그런 편향된 시각 속에 관철된 셧다운제와 그 뒤를 따르는 규제의 위협들은 어느 새게이머들과 게임산업의 자유를 심각하게 옥죄고 있다. 게임을 산업으로 인정하는 시각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임은 물론이다.


 
셧다운제와 같은 게임 규제를 다루는 이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이론과 단편적인 주장들을 통해 마치 게임이 청소년 건강과 뇌의 성장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유해물인 양 취급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주장에 대한 객관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할 뿐더러, 그렇게 유해한 게임산업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끌어들여 금전적 이득을 강탈하려는 속물적 욕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디아블로 3>의 출시가 결정되자 블리자드는 악마가 돌아왔다(Evil is Back)라는 문구를 광고 문구로 사용했고 세간에서도 그 말을 본따 <디아블로 3>을 이야기할 때 '악마의 재림' 등의 자극적 표현을 쓰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는 게임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더 무서운 악마가 이미 횡행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사회의 분위기가 게임에 적대적으로 변하다 보니 출시되는 게임들 역시 그런 시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충분히 청소년이 이용 가능한 게임들마저 피 색깔을 더욱 붉게 바꾸거나, 게임 진행에 큰 개연성이 없는 욕설을 집어넣는 방법으로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으로 둔갑하는 상황이다. 물론 디아블로 시리즈는 처음부터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었기 때문에 등급 자체를 놓고 지금의 적대적인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 때리기에 나서는 이들은 본래 폭력성과 몰입감으로 유명한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이 등장하게 되면 그것을 빌미로 또 다시 게임의 유해성과 폭력성 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낭설들을 사실인 양 퍼뜨릴 것이 분명하고, 지금 <디아블로 3>은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디아블로 3>은 본연의 특징인 폭력성과 몰입감 이외에도 논란이 될 만한 요소를 한 가지 더 가지고 있다. 출시 이전부터 논란이 된 '화폐 경매장'이 그것이다. 화폐 경매장이란, 말 그대로 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3>에 한해 게임 내에서 현금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일찍부터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거래하는 아이템 중개사이트에 익숙한 것이 대한민국 환경이니 이것이 새삼스럽게 논란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한 꺼풀 벗겨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속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의 게임에 대한 이중적 태도 중 하나가 여기에도 '불편한 진실' 의 형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피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허용되다 보니 권리 개념은 왜곡된다. 아이템 중개사이트가 게임사들에게 법적인 허용을 받고 아이템을 판매한다고 착각하거나, 자신의 거래를 보호해 줄 법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부분 유료화 아이템의 판매와 중개사이트의 아이템 거래행위를 자의적 기준에 의해 동급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게이머의 권리만큼이나 보호받아야 하는 게임의 권리는 빈번하게 무시된다. 이렇게 현금 거래에 대해서도 이중적 환경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디아블로 3>의 화폐 경매장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당연하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게임사들이 해외에서 화폐 경매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현금 거래를 관리하고 있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을 지키기 위해 무시된다.
 
물론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3>의 출시 소식을 알리며 대한민국에서 서비스되는 <디아블로 3>의 경매장은 국내법을 준수하기 위해 당분간 게임 내 화폐인 금화로만 거래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것이 <디아블로 3>의 출시 시기에 맞물려 이슈가 될 일은 일단 없어 보인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공식적으로 모든 글로벌 서비스에서 동일한 버전을 서비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고 화폐 경매장 역시 재심의를 청구할 의사를 밝히고 있으므로, 금화로만 경매장이 운영될 예정인 지금 당장이라면 몰라도 다시 화폐 경매장이라는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그리고 시리즈 고유의 폭력성이 어떤 계기로 다시 원치 않는 주목을 받게 되면 게임에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와, 화폐 경매장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 속에서 <디아블로 3>은 이중적 사회에 의해 '진짜 악마'로 몰릴 수도 있다.

 
<디아블로 3>의 출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지금 <디아블로 3>의 성공 여부와 재미 요소, 그리고 다른 흥미거리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게임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해 봤을 때 당연한 일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사례를 종합해 미래를 유추하기에 바쁘고 대부분의 경우 그 유추한 미래는 전부든, 아니면 일부든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게임 시장에는 그 어떤 예상도 모조리 무시할 수 있는 간단하고 분명한, 그리고 절대적인 법칙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재미' 다.
 
<디아블로 3>을 통해 경험할 모험과 악마 퇴치가 즐거운 일이라면 부정적 예상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악마 퇴치를 즐겁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면 긍정적 예상은 의미를 잃게 된다. 정말로 악마가 재림하여 세상을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디아블로라는 악마는 과거의 추억에서만 남아야 했던 것인지. 그것은 <디아블로 3>을 경험할 수 있는 5월 15일이 온 다음에야 사람들의 낯빛에서, 그리고 여러분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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