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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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 PC사랑
  • 승인 2011.06.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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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PG가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었다
“<디아블로>는 블리자드에서 만든 게임이다.” 지금 이 명제를 의심하거나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명제 역시 뒤바뀔 뻔 했던 적이 있다. <디아블로>가 블리자드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디아블로>는 초기 블리자드 창업 멤버들이 만든 게임이 아니었다. <워크래프트 2> 외주를 맡긴 게 인연이 된 콘도르(Condor)라는 개발사를 블리자드가 인수한 뒤 ‘블리자드 노스’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완성시켜 내놓은 게임이다. 혹자는 이런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블리자드는 블리자드 노스가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블리자드가 콘도르를 눈여겨보고 블리자드 노스로 편입하지 않았으면 RPG 장르에서 지금의 높은 인기를 누리기는커녕, 제작 노하우조차 쌓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노스의 유능한 개발자들을 만나 자신들이 작업하던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와 다른 성격의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또 ‘디아블로의 아버지’로 유명한 빌 로퍼가 제작자이자 블리자드 노스 부사장 신분으로 <디아블로> 등 ‘잠룡’ 게임들을 개발, 지휘하면서 대성공을 이끌어낸 사실만 봐도 이 주장은 언뜻 설득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주장 밑바탕에는 블리자드가 <디아블로>의 성공을 거저주웠다는 의미가 깔려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다. 블리자드 노스에서 개발 중이던 <디아블로>는 지금처럼 실시간 액션 RPG가 아니라 당시 대세였던 턴(Turn) 방식 RPG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미 시장은 일부 마니아들이 일본에서 만든 RPG를 즐기기도 했고, TRPG 규칙을 구현한 북미와 유럽 RPG가 두각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적어도 <디아블로>를 만들 당시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RPG가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성을 확보한 상태는 아니었다. 더욱이 블리자드 노스 개발팀은 PC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던 팀이었다. 때문에 <디아블로>가 턴 방식으로 나왔다면 성공했을지, 또 단지 블리자드가 능력 있는 개발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뒀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블리자드 개발자들은 초기 <디아블로>에 자신들의 생각을 접목하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그 중에는 게이머들끼리 온라인에서 게임을 하는 ‘배틀넷’(Battle.net)과 실시간 진행, 즉 리얼 타임 플레이 방식으로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당시 턴 방식 RPG가 막 유행하던 시절이라 이런 변경 안을 본 다른 개발자들은 회의적이었다. 싸움 방식을 실시간으로 바꾸면 게임이 더 번잡스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그러면서 “실시간으로 고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반나절이면 바꿀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 하지만 그들이 투자한 반나절은 단순히 <디아블로>라는 게임만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바꿨다.

이렇게 실시간 액션, 인터넷, 그리고 무작위 변수 등 다른 게임에서는 찾기 힘든 요소들을 잔뜩 머금은 <디아블로>는 등장과 동시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하지만 의견은 반반이었다. 우선 전투와 액션, 마법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게임 방식과 사람끼리 대결이 가능한 배틀넷 등 독특한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호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턴 방식 RPG가 진짜 RPG라는 생각을 가진 보수적인 게이머들과 게임 전문가들은 <디아블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넘어 아예 대놓고 경멸하기까지 했다. <디아블로>를 두고 ‘돌연변이 장르의 게임’ ‘잡종 게임’과 같은 식으로 장르 개념이 불명확하다고 무시하는 축은 그나마 낫다. “이것은 RPG가 아니라 액션 게임이나 갤러그 같다”거나 “RPG의 깊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식으로 비평과 악평을 동시에 토해내기도 했다.

이런 고정관념 혹은 보수적인 시선에서 나온 부정적 평가에 대해 빌 로퍼는 “우리는 RPG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려 했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디아블로>는 <디아블로>만의 게임성과 새로움에 힘입어 전 세계에서 300만 장 이상을 팔며 게이머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수많은 게이머들을 잠 못 들게 만든 <디아블로>의 설치 화면



블리자드와 블리자드 노스의 관계를 단순하게 보는 것은 위험하다.

디아블로 자투리 이야기 I
빌 로퍼, 그의 성공과 몰락
지금은 게임계 큰 손으로 통하는 빌 로퍼지만, 그 역시 한 때는 임시 직원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블리자드 초기 게임 중 하나인 <블랙 쏜>(Black Thorn)의 게임 음악 제작을 맡은 임시 직원이었다. 이후 <블랙 쏜>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풍부한 상상력, 적극적인 의사 표현 등으로 팀원들 사이에서 우호적인 평반을 두루 얻었다. 발랄한 성격에 힘입어 블리자드는 빌 로퍼를 콘도르 개발자과 개발 과정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을 맡겼다.

이후 그는 회사 인수와 게임 개발 공로 등을 인정받으며 블리자드 노스 부사장으로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 등 블리자드 대표작 제작을 진두지휘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국내에서는 PC방 성장 등과 맞물려 <스타크래프트>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블리자드 대표이사 마이크 모하임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블리자드의 대표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빌 로퍼였지만, 블리자드 모회사인 비벤디가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갈등을 빚는다. 2003년 무렵 빌 로퍼는 블리자드 노스 주축 멤버인 데이비드 브레빅과 쉐퍼 형제 등과 함께 블리자드에서 나온다. 그의 블리자드 사직 소식은 CNN에서 특집으로 다룰 만큼 세간의 큰 화제가 됐을 정도다.

빌 로퍼는 새로운 개발사인 플래그십 스튜디오를 세우고 <헬게이트 : 런던>과 <미소스>를 내놓았다. 출시 전부터 관심을 모은 <헬게이트 : 런던>은 당시 출시도 하지 않은 <디아블로 3>의 라이벌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모습을 드러낸 <헬게이트 : 런던>은 “‘헬게이트’(지옥 문)이 열렸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몰락했다. <디아블로>에서 무작위 변수와 액션을 따왔을 뿐, 게임 완성도가 미흡했다. 잦은 오류는 게이머들의 원성을 샀고, 온라인 게임의 기본적인 편의성조차 갖추지 못했기에 참패는 당연했다.

이후 빌 로퍼는 플래그십 스튜디오가 도산하면서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불행까지 겹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8년 11월에는 <시티 오브 히어로>를 만든 크립틱 스튜디오에 합류, <챔피언스 온라인>과 <스타트랙 온라인> 등 MMORPG 개발에 참여했지만 이 게임들도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2010년 8월 크립틱 스튜디오를 퇴사하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몰락은 <디아블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디아블로 3>를 보고 “<디아블로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비평을 내놨는데, 오히려 “그럴 만한 자격이 되느냐”는 조롱 섞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II <디아블로>, 게임 세상의 선구자가 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호기심이 동해서 <디아블로> 1탄을 해볼까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노파심에 적는다. 2011년 현재 시스템에서 <디아블로> 1탄은 원활히 즐기기 어려운 게임이다. 당장 윈도우 7 같은 최신 운영체제에 최적화된 게임이 아니어서 실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액션이나 이동 속도가 지금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려서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 게임이 지금 나온다면 무슨 험한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10여 년 전 이 게임은 대한민국 시장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몰고 온 파장이란 어마어마했다. 당시 300만 장이라는 판매 기록만으로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우스로 게임 세상을 정복하다
<디아블로>가 전파한 게임의 묘미는 여러 가지다. 먼저 마우스 하나만으로 게임에서 모든 행동이 가능한 ‘포인트 & 클릭’(Point & Click) 시스템은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시스템의 편리함과 중요성을 깨우쳐줬다. 지금이야 마우스로 못하는 일을 찾는 게 훨씬 빠른 시대지만, 당시에는 RPG, 어드벤처, 액션 할 것 없이 모두 키보드에 의존했다.

<디아블로>는 마우스를 적극 활용해 게임 속 거의 모든 동작을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현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즐긴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소위 ‘정통 RPG’를 즐긴다는 이들 사이에서 잡종 게임 취급을 받았다. 아직도 그런 주장을 펼치면서 <디아블로> 시리즈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는데, 현재 게임 인터페이스를 보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정녕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일 뿐이다.

무료 배틀넷, 전 세계 게이머 모임장소로 되다
<디아블로>에서 도입한 배틀넷은 그때만 해도 다른 게임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스템이다. 물론 이전에도 안팎으로 멀티플레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놀이가 가능한 게임은 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디아블로>보다 1년여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최초의 MMORPG <바람의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디아블로>는 게임을 구입해 인터넷에 접속하면 ‘배틀넷’이라는 공간에 들어와 따로 비용 지불 없이 자유롭게 여러 사람과 게임을 즐기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이전의 다른 게임들이 내놓은 인터넷 플레이와는 분명 차별을 둔 시스템이었다.
이후 배틀넷이라는 이름은 <디아블로> 이후 패키지 게임의 멀티플레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고, <디아블로>가 패키지 게임이면서 온라인 게임과 다름없는 가치를 지니는 기반이 되었다.

배틀넷이 자리 잡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예컨대 초기 배틀넷은 다른 게이머들과 함께 놀거나 싸우는 장소면서 시장이었다. 다른 게이머 물건일지라도 땅에 떨어지면 주울 수 있어서 거래할 물건을 서로 땅에 내려놓고 바꿔 줍는 양심적(?) 방식으로 시장 행위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악용한 사기도 많았다. 블리자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고, 이후 배틀넷 서비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서비스에도 영향을 끼치며 공고한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디아블로>가 가져온 영향력은 판매 기록 이상의 것이었다.

무작위 요소, 매번 새로움을 불러오다
배틀넷이나 포인트 앤드 클릭 시스템에 비하면 무작위 요소 영향력은 좀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대단했다. <디아블로> 아이템 옵션은 일정 범위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데, 같은 무기를 얻어도 옵션은 제각각이었다. 이런 무작위 요소는 맵이나 시나리오에도 적용되어, 같은 지형이라도 접속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특정 지역에서 일정 확률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퀘스트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게이머는 폭군 레오릭 왕과 상대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고, 반대로 라크다난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도 맛봤다. 무작위 요소는 게이머들이 한 번 하고 마는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반복 플레이를 하게끔 유도해 게임 속에서 재미 요소를 스스로 찾게 만들었다.


<디아블로 3>에서 더욱 강해져 돌아올 ‘스켈레톤 킹’ 레오릭 왕.

국내 게임 세상을 뒤엎은 <디아블로>
<디아블로>가 몰고 온 문화적 충격은 어마어마 했다. 가정마다 PC 보급률이 높아진 덕에 게이머들 계층이 넓었기에 다른 나라보다 더 크고 깊었다. 그 전까지 소수 마니아들이나 언어 장벽 속에서 근근이 외국 게임을 즐기는 수준이었다. 막 PC를 구입해 게임을 시작한 게이머들은 일본식 RPG나 이에 영향을 받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창세기전> 같은 국산 RPG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디아블로>는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니아부터 게임 초보자까지 빠질 만큼 재미있어서, 이전보다 RPG에 훨씬 많은 게이머들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디아블로>의 대히트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비로소 ‘복합장르 게임’이 세간에 알려지며 화제가 된 계기가 됐고, ‘장르 파괴’라는 표현도 <디아블로>를 통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장르끼리 특징을 섞은 퓨전 장르 게임들이 나온 바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게임이 <디아블로>만큼 문화적 파급력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

더불어 <디아블로>는 달갑지 않은 면으로도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스타크래프트>와 더불어 와레즈(Warez)나 불법복제 CD 같은 불법 공유의 먹잇감이 된 것. 때문에 이른바 ‘어둠의 경로’가 활성화하는데 기여한 소프트웨어라는 슬픈 역사도 갖게 됐다.

디아블로 자투리 이야기 II
이게 다 <디아블로> 때문이다? <디아블로> 이후 눈물 흘린 게임들
<디아블로>가 내놓은 재미 요소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예컨대 포인트 앤드 클릭 시스템은, 이후 여러 게임들에게 전파되면서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디아블로> 성공 이후 여러 해에 걸쳐 나온 RPG들 중 상당수가 이 시스템을 창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디아블로> 인터페이스와 전투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고, 이는 최근의 <미소스>나 <토치라이트> 같은 게임들에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국산 게임 <리니지>는 <디아블로>의 기본 시스템은 물론, 살인적인 경험치 구조까지 그대로 답습해 게이머들에게 오랜 기간 큰 좌절(?)을 안겼다.

[그림 05] <토치라이트>처럼 <디아블로>의 구조와 비슷한 게임이 지금도 나온다.
이 정도라면 그저 ‘성공한 원작을 따라한 아류작’이라는 사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만든 RPG나 MMORPG들이 <디아블로>처럼 액션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게임이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액션 비중을 없앤 게임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MMORPG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게이머들이 다른 즐길 거리는 제쳐두고 오로지 물약을 소모하면서 레벨 올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디아블로> 방식을 답습해 만든 게임일지라도 게이머들은 ‘물약 게임’이라고 부르며 특색 없는 중노동 게임들로 치부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스트>가 어드벤처 마니아들 사이에서 어드벤처 게임 장르를 망쳤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디아블로> 역시 게임 시장을 획일화시키고 RPG 개념을 어그러뜨렸다는 비난을 듣는다.

이 현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디아블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미 시장에서는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게임을 만들기보다 기존 성공사례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게이머들 역시 <디아블로>나 <리니지> 방식 게임들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고, 다른 스타일의 게임에 배타적이었다. 결국 모험보다 안정을, 변화보다 익숙함을 추구했던 개발사와 게이머들의 안일함이 맞물려 시장을 형성해 아류작의 범람을 초래한 것이다.


<디아블로>의 시스템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 성공했던 <리니지>.

III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있다
<디아블로> 출시 후 3년여가 지난 2000년 6월. 계보를 잇는 <디아블로 2>가 나왔다. 그 무렵 게임 세상은 <디아블로> 노선을 답습한 여러 게임들이 넘쳤다. 그중에는 <리니지>처럼 전투 방식은 물론, 45도 각도로 내려 보는 쿼터 뷰 시점, 경험치 구조까지 그대로 답습한 게임이 많았다. 아니면 <녹스>처럼 액션을 추구하되 창의적인 시도를 한 게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게임 추세는 패키지 CD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때문에 PC방에서 유행하는 게임도 <포트리스 2>, <리니지>, <바람의 나라> 같은 온라인 게임이 대세였다. 물론 <스타크래프트>가 패키지 CD 게임으로 유일에 가깝게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흐름은 온라인이었다.

이런 가운데 나온 <디아블로>는 전작에 친숙한 게이머들이 많은 탓에 어느 정도 실적은 기대가 됐다. 그러나 어느 콘텐츠를 막론하고 통하는 금언, 즉 ‘1편보다 나은 2편은 없다’는 속설이 맞을지에 대한 이목도 많았다. 당시 공개한 화면 중에는 전작 분위기와 다른 밝은 사막 지형 등은 “이것은   <디아블로>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금 보면 섣부른 의견도 팽배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디아블로 2>는 ‘1탄보다 나은 2편은 없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디아블로 2>는 출시 2주 만에 전 세계에서 1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약 750만 장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전작 판매량 2배에 달하는 수치다.

1편 아성을 깨고 크게 성공한 사례는 게임계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때문에 <디아블로 2>의 성공은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들조차 크게 놀랐다. 국내에서도 전작보다 훨씬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 한 해 동안 200만 장 이상을 팔았다. 이러한 판매가 가능했던 것은 게이머들의 힘이라기보다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디아블로 2>의 PC방 수요가 많았던 덕이다.


<디아블로 2>는 여러 면에서 전작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괴의 군주>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악마 바알의 모습.

그래픽, 시나리오, 캐릭터 삼박자의 절묘한 조합
<디아블로 2>는 캐릭터와 배경 묘사가 뛰어난데다 3D 그래픽을 적극 활용해 볼거리를 강화했다. 곳곳에 들어간 동영상도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또 스토리 진행에 따라 변하는 날씨, 기후, 지형 등의 연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캐릭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작에서 그냥 걷기만 하던 캐릭터들이 뛰어다니는 등 기본 동작부터 강화한 액션을 선보였다. 스킬이나 마법도 역동성을 더해 캐릭터 다루는 재미를 더했다. 맵과 아이템에서 쓰는 무작위 변수도 강화해 게이머들이 거의 무한한 지형과 보상 아이템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게임 시나리오에 따라 최종 보스인 메피스토와 디아블로, 바알을 차례로 쓰러뜨린 후에도 더 멋지고 강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게임을 찾게 된 것이다.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전작은 확장팩 <헬파이어>까지 포함해도 직업이 4개였다. 근접, 원거리, 마법이라는 일종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디아블로 2>는 확장팩의 어쌔신과 드루이드를 포함해 7개 직업군이 존재한다. 마법 계열이라도 소서리스는 원소 계열, 네크로맨서는 암흑 또는 소환 계열로 구분했다. 게이머는 입맛 따라 선택한 직업군, 스킬 트리에 따라 한층 다양한 캐릭터를 키울 수 있었다. 이는 다시 게이머 스타일에 따라 양적, 질적으로 다변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 번하고 보관하는 게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즐기는 게임이 됐다는 말이다.

<디아블로> 확장팩이 역사 속으로 묻혔을 때 <디아블로 2>는 악마 3형제 중 바알을 주인공으로 삼은 확장팩 <파괴의 군주>까지 선보이며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악마 3형제를 처치하면서 지긋지긋한 악연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엔딩 크레디트에서 대천사 티리얼은 월드스톤, 즉 세계석이 타락했음을 알고 그것을 독단적으로 파괴한다. 티리얼이 월드스톤을 파괴하는 장면과 그 사실에 의아해하는 NPC의 반응은 마치 1편에서 디아블로를 해치운 전사가 자기 머리에 디아블로 소울스톤을 스스로 찔러 넣는 장면과 비슷하다. 자연히 후속 <디아블로 3>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디아블로 자투리 이야기 III
<디아블로>의 존재감 없는 확장팩<헬파이어>
인기 절정의 게임이니 그에 맞춰 확장팩들도 나왔다. 흔히들 ‘디아블로 확장팩’이라 하면 <디아블로 2> 확장팩인 <파괴의 군주>만 떠올린다. 그러나 그전에 비운의 망작으로 역사에 남은 <헬파이어>라는 1편 확장팩이 있었다.
<헬파이어>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배틀넷을 통해 확장팩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했다. 둘째, 확장팩에서 새로운 스테이지 8개가 나오고 디아블로의 부관인 ‘나크롤’이라는 악마가 등장하지만, 본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새로 추가한 직업군과 마법 등으로 밸런스가 깨지면서 짜임새도 엉성했고, 몽크를 제외한 바드나 바바리안 등은 만들다 만 채로 나와 게이머들의 빈축을 샀다.

무엇보다 <헬파이어>는 블리자드가 만든 확장팩이 아니었다. 시에라 온라인 산하 시노조익 소프트웨어에서 개발했다. 왜 블리자드가 직접 확장팩을 제작하지 않았는지는 이유가 분분하다. 대표적인 것은 블리자드가 비벤드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역시 비벤디에 인수되어 있던 시에라 온라인이 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스타크래프트> 개발에 주력하느라 그랬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모두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다.

블리자드도 자신들이 직접 만들지 않은 탓인지, 지금도 <헬파이어>를 홈페이지에서 소개하지 않고 있다. 패치를 계속하는 <디아블로>와 달리, <헬파이어>는 별다른 유지, 보수도 하지 않다가 <디아블로 2>가 나오면서 아예 잊혀졌다.


<헬파이어>는 확장팩으로 출시되었지만 지금은 비공식 게임 취급을 받고 있다.

IV  그리고 7년 후…
<디아블로 2>가 나온 직후부터 블리자드가 시리즈의 후속을 개발 중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모두 루머로 밝혀졌다. 오히려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나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 등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2003년에는 빌 로퍼와 핵심 개발자들이 퇴사하면서 곧 후속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게이머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항간에는 블리자드가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다행히(?) 블리자드는 MMORPG 시장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들고 나와 전 세계를 제패했다.

그런 가운데 <디아블로 3>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언급됐다. 다만 블리자드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신작 게임 개발 중이라는 두루뭉술한 것들뿐이었다. 오히려 빌 로퍼의 <헬게이트 : 런던>이 나오지도 않은 <디아블로 3>의 경쟁자인양 알려지면서 디아블로 시리즈가 회자됐을 뿐이다.


<헬게이트: 런던>은 디아블로 시리즈와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시나브로 모습 드러낸 <디아블로 3>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사라질 무렵, <스타크래프트 2>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년 뒤, 게이머들의 바람이 현실이 되어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3>와 관련한 도메인을 등록, 확보하는 사실은 그나마 약한 떡밥에 속한다. 2008년 블리자드의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는 이례적으로 입장 연령 제한이 걸렸는데, 그 제한 조건이 <디아블로 2> 유럽 연령 제한과 정확히 일치했다. 또 블리자드 WWI 개최시기인 2008년 6월 29일은 <디아블로 2> 확장팩인 <파괴의 군주>가 나온 2001년 6월 29일과 겹친다는 것(<디아블로 2> 출시일은 2000년 6월 29일이다) 등에서 디아블로 시리즈의 후속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확실한 소식은 블리자드 WWI 2008을 준비하던 프랑스에서 새어 나왔다. 당시 티저 이미지에 등장하는 의문의 대상이 디아블로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면서 이래저래 디아블로 시리즈 차기작에 대한 발표가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런 가운데 혹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례를 들며 <디아블로> 역시 ‘디아블로 온라인’ 등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놨다. 하지만 여러 징후를 볼 때 2008년 공개하는 블리자드 게임 차기작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정통 후속인 <디아블로 3>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예상, 혹은 기대는 벗어나지 않았다. 2008년 6월 29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디아블로 3>의 실체가 공개된 것이다. 블리자드 대표이사 마이크 모하임의 “새로운 뉴스가 하나 더 있다”는 말과 함께, <디아블로> 팬이라면 친숙할 음악과 함께 영상이 공개된다. 거기에는 소울스톤 없이도 건재한 디아블로와 악마 군단의 위용이 담겨 있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디아블로 3>는 5개 직업군 중 전작과 관련 있는 야만용사(바바리안)와 의술사만 공개했다. 이후 일반인을 대상으로 <디아블로 3>를 최초로 시연했으며, 새로운 직업군인 마법사도 추가로 공개했다. 1년 뒤엔 블리즈컨 2009에서는 <헬파이어>에서 추가했던 수도사(몽크)를, 그리고 블리즈컨 2010에서는 마지막 직업군인 악마 사냥꾼을 공개했다.

<디아블로 3>가 모습을 드러낼수록 게이머들 대부분은 환호했다. 일부는 <디아블로 2>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디아블로 3>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지 않다고도 하는 등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주된 맥락은 새로운 <디아블로 3>에 대한 기대감이라 봐도 될 만큼 많은 게이머들이 기대하는 중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블리자드 WWI 2008을 앞두고 공개되었던 티저 이미지의 일부.

VII <디아블로 3>,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최근 블리자드 발표를 보면 <디아블로 3>는 2011년 내에 나오는 것이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출시 일자를 기꺼이 포기하는 블리자드임을 감안하면, 연내 <디아블로 3> 출시가 확정적이라 하긴 어렵다. 다만 현재 개발 상황으로 보면 비공개 테스트를 연내 시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지난해 <스타크래프트 2>가 12년의 침묵을 깨고 등장한 것처럼, <디아블로 3> 역시 11년 만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블리자드 표’라고 무조건 팔리지 않는다
지난 11년 간 시장 상황이나 게이머 기호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런 가운데 <디아블로 3>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제일 중요한 것은 게임을 잘 만드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전제를 제외하면 아마도 판매정책일 것이다.

게이머들이 지갑을 열어야 많이 팔리는 만큼, 다양한 유형의 판매 정책이 필요하다. 블리자드는 그간 특정 계층 게이머들보다 한 명이라도 많은 게이머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지만, 지난해 <스타크래프트 2>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2010년 7월 27일 출시 이후 그해에만 450만 장 이상을 팔며 전작 <스타크래프트> 첫 해 성적을 3배 가까이 넘어섰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외부적으로는 저작권 분쟁 등이 있었겠지만, 게이머들 바람을 무시한 처사도 한몫 거들었다. 즉, 패키지를 판매하지 않은 블리자드 코리아의 최초 전략이 잘못됐다는 것이 제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불법공유와 복제로 인해 패키지 게임 시장이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블리자드 게임 마니아들은 기꺼이 패키지 게임을 구입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이머들 역시 패키지 판매를 원했다. 그러나 블리자드 코리아는 이런 의견을 묵살하고 패키지는 내놓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는 게이머들의 반발로 이어졌고, 결국 구매 감소와 평판 하락이라는 이중 악재로 되돌아갔다.
그간 블리자드는 다양한 성향의 더 많은 게이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므로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2>처럼 패키지를 내놓지 않는 우를 범하며 게이머들의 선택 방법을 스스로 줄이는 자충수를 두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게이머만큼 중요한 PC방
국내에서 <디아블로 3>가 자리를 잡으려면 PC방과 관계 설정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아마도 <디아블로 3>는 배틀넷 2.0 환경을 이용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2>처럼 배틀넷 통합 이용요금을 택할 것이다. 요금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블리자드 코리아 업무 스타일에 불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정책을 짜야 할 것이다.

최근 PC방은 전면 금연 등 비상식적인 규제에 직면했고, 개인 PC 제원도 좋아지면서 PC방을 찾는 이용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PC방을 통한 입소문이나 홍보 역량은 건재하다. 무엇보다 <디아블로 3>는 그 특성상 20~30대 성인들이 주로 즐기는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PC방과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야 할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파트너십 설정도 주의해야 한다. <디아블로 2>가 흥행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블리자드 게임이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다. 옛날처럼 새로운 게임이나 예전 게임들보다 월등히 좋은 게임이라 해도 시장 평정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게임 외적인 문제로 잡음이 생기면 그만큼 게임 흥행에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3> 출시를 앞둔 현재 KeSPA나 게임방송사와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을 매듭지은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이 밖에 배틀넷 2.0 환경을 국내 게이머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가입 절차도 간편하게 해서 더 많은 게이머들이 배틀넷 2.0을 이용토록 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2> 개인 이용자 수는 <스타크래프트 1>보다 나은 편이지만, PC방 점유율에서 뒤지는 이유는 복잡한 배틀넷 2.0도 일조하고 있다. 한편으로 <디아블로 2>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비하면 소수고, RTS와 달리 RPG 시장 상황이나 성격이 달라 <디아블로 3>는 다른 현상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틀넷 2.0 환경을 개선하는 편이 이런 희망에 기대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가 대한민국에서 기대에 못 미친 것은 판매 정책의 실패가 크다.

전설적 악마의 귀환, 성공 가능성 짙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나온 뒤, 많은 게임들이 후계자를 자처했지만 후계자는 오직 디아블로 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블리자드는 지금껏 실패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승승장구해 왔다. 여기에 ‘디아블로 시리즈’라는 브랜드 가치도 뛰어나고, 실제로 <디아블로 3> 역시 지금까지는 기대에 벗어나지 않아 대박 조짐이 보인다. 물론 <디아블로>를 뛰어 넘은 <디아블로 2>처럼 <디아블로 3>가 그렇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또 디아블로 시리즈 게임성이 11년이 지난 지금에도 참신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과연 이번에도 ‘디아블로 시리즈의 후계자는 오직 디아블로 뿐이다’라는 말을 <디아블로 3>가 재확인시켜줄 것인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대천사 티리얼의 운명은 <디아블로 3>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소재이기도 하다.

2011년 최고의 기대작
미리 보는 <디아블로 3>
I. <디아블로 3> 주요 시스템
체력 회복 시스템
게이머 캐릭터들은 기존 디아블로 시리즈처럼 구슬 안에 담긴 붉은 액체로 체력을 표시한다. 피해를 입으면 액체 양이 줄어드는 시스템은 전작과 똑같다. 때문에 흔한 ‘물약 게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이를 우려했는지, 체력회복 물약을 쓸 때 지연 시간이 생겼고, 값도 이전보다 비싸졌다. 따라서 <디아블로 3>에서는 이전 디아블로 시리즈처럼 물약 여러 병을 한 번에 마셔 체력을 회복하는 일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대신 몬스터를 처치하면 일정 확률로 얻는 ‘피 구슬’을 이용해 체력을 즉시 회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몬스터에 따라 구슬 양도 다르고, 보스 몬스터는 일정 피해를 입을 때마다 피 구슬을 떨어뜨린다. 이를 이용해 보스와 맞붙을 때, 보스 이외 몬스터는 제치고 최대한 보스에게 피해를 입히며 공격하는 전략이 가능할 전망이다. 반대로 부하들부터 처치하면서 피 구슬을 확보한 뒤 지구전을 벌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피구슬은 그 특성상 멀티 플레이 던전에서 더욱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 몬스터와 싸우려면 예전보다 더 많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장인 시스템
게이머를 대신해 장인 NPC들이 아이템을 만들고 소켓을 박아준다. 장인들은 성역 곳곳에 있지만, 이들을 영입하려면 게이머 명성 등 조건이 필요하다. 한 번 영입한 장인은 필요할 때마다 방문할 수 있고, 모든 장인은 본인 특기에 관련한 물품을 파는 상인 역할도 한다. 게임을 원활히 하려면 여러 기술을 지닌 다양한 장인을 최대한 모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디아블로 2>부터 나온 소켓 시스템은 3편에 와서 대장장이에게 돈을 주면 언제든지 뚫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개선됐다. 이에 따라 <디아블로 3>에서는 MMORPG 제작 시스템처럼 재료를 모아 장인에게 아이템 제작을 의뢰하는 식으로 변한다. 능력치는 기본 성능과 더불어 무작위 옵션이 적용되어, 만들 때마다 다른 성능이 추가되는 식이다. 필요 없는 아이템은 분해해서 업그레이드에 들어가는 재료로 바꿀 수 있다.


<디아블로 3>에서는 자신만의 장인들을 고용할 수 있다.

투기장 시스템
게이머끼리 싸우는 PvP 전투는 성역 곳곳에 위치한 투기장에서 펼쳐진다. 각 투기장은 지형지물이 제각각이라 본인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벌일 생각이면 잘 골라야 한다. 투기장 PvP는 1:1 뿐만 아니라 협동도 가능하고, 투기장 순위 시스템에 참가하면 얻는 점수를 통해 칭호나 멀티 플레이어 업적 등이 쌓인다. 배틀넷 대전 상대 찾기 시스템을 활용해 비슷한 실력의 상대를 찾아 대결하는 재미도 있다. 블리자드는 순위 시스템에 구애 받지 않고 투기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구상 중이라고 했으니 최종적인 모습은 두고 봐야 알 전망.

추종자(용병) 시스템
주요 시스템 중 가장 최근에 공개된 추종자 시스템은 전작 용병 시스템을 계승하되, 용병이라는 용어 대신 추종자라고 바뀐다. 마을에 따라 선택하는 용병이 변하는 전작과 달리, <디아블로 3>는 추종자 유형이 정해져 있다. 예컨대 기사단원은 게이머를 따라다니며 방어와 치유를 맡는다. 불한당은 원거리 공격을 맡고, 요술사는 캐릭터에 강화 마법을 걸고 원거리 공격을 맡는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추종자는 마을에서 대화를 통해 얻는 식이다. 또 직업군에 따라 고유 무기와 스킬 트리도 생길 전망이다. 추종자들은 죽지 않는 식이라 추종자 살리느라 게임 흐름을 끊어먹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추종자는 싱글 플레이에서만 쓸 수 있고, 멀티플레이 때는 마을에서 대기한다.


<디아블로 3>의 추종자 직업군 중 하나인 기사단원의 모습.

II. <디아블로 3>의 직업군 소개
야만용사(Barbarian)
<디아블로 2>의 바바리안이 바로 야만용사다. 본디 야만용사 임무는 아리앗 산과 그 안에 숨은 세계석을 수호하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석은 파괴되었고, 아리앗 산은 무너졌으며 해로개쓰는 폐허가 된다. <디아블로 3> 야만 용사는 이후 20년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전작과 달리 흰머리와 수염이 백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야만용사는 모든 근접 무기를 다루는 근접전 스페셜리스트다. 여기에 고대의 창이나 지진 강타 같은 원거리 대상 스킬이나 범위 스킬이 강화되는 등 직업군의 특징과 기술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덕분에 전작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적을 공격하게 됐다.


야만용사의 디자인. 전작에 비해 세월이 느껴진다.

의술사(Witch Doctor)
전설로만 전해진 움바루 부족 출신. 소환과 연금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2탄의 네크로맨서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훨씬 더 적극적인 성격이다. 예컨대 물약으로 폭탄은 물론, 적을 이상 상태로 만드는 마법도 건다. 수많은 적이 몰려 올 때 혼란이나 공포 기술을 쓰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캐릭터 콘셉트는 남미나 아프리카 원주민 혹은 원시 부족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다수의 적을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데에 유용해 보이는 의술사.

마법사(Wizard)
전격, 화염, 냉기 등 원소 계열 마법을 주로 쓰는 탓에 1탄의 소서러나 2탄의 소서리스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마술사’가 아닌 ‘마법사’인 이유는 금지된 마법 등으로 적을 공격하기 때문. 의술사와 네크로맨서 관계처럼 마법사 역시 상당히 적극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캐릭터 콘셉트는 동양이나 중동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다. 고향이 ‘시안사이’라는 것만 봐도 동양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직업군으로 보인다.


여전히 강력한 마법 공격을 자랑하는 마법사.

수도사(Monk)
망작 <헬파이어>에 등장한 바 있지만, 블리자드표 <디아블로>에서는 첫 등장이다. 공개 영상에서는 봉을 썼지만, 카타르와 같은 장착 무기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만용사와 더불어 물리 공격을 주로 하지만, 서양 캐릭터들과 달리 동양 권법의 특징과 힘을 자랑한다. 남자 수도사는 소림사 승려 느낌이지만, 여성 수도사는 무투가 스타일이라 캐릭터 취향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소림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남자 수도사.

악마 사냥꾼(Demon Hunter)
언뜻 2탄의 아마존과 어쌔신을 합친 느낌이다. 그러나 아마존처럼 원거리 공격에만 의지하거나, 어쌔신처럼 근접 공격이나 덫으로 적을 처치하지도 않는다. 석궁, 폭탄, 덫 등 가리지 않고 쓰면서, 원거리 공격도 강력하다. 전작에서 기원을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악마 사냥꾼은 하나같이 과거에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 그것을 계기로 악마 사냥꾼 일원이 되었다. 따라서 내면에 증오와 분노를 지녀 절대 선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RPG 주인공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이른바 ‘안티 히어로’ 느낌이다. 여성 악마 사냥꾼의 디자인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여군주 실바나스 윈드러너와 매우 흡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악마 사냥꾼(위쪽)과 실바나스 윈드러너(아래쪽)는 매우 비슷하다.

디아블로 자투리 이야기 <디아블로>의 등장 인물 잔혹사
● <디아블로> 1편에는 전사(워리어), 소서러, 로그 등 세 직업군이 존재한다. 사실 이들은 <디아블로>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주인공 대우는커녕 잔혹한 결말을 맞았다. 전사는 디아블로를 쓰러뜨린 뒤 디아블로 소울스톤을 자기 머리에 꽂아 넣고 <디아블로 2>의 디아블로로 타락한다. 그나마 전사는 좀 낫다. 로그는 안다리엘에 의해 타락해 <디아블로 2>의 액트 1에 등장하는 퀘스트 몬스터인 블러드 레이븐이 되었고, 소서러도 디아블로를 처치하는데 실패한 이후, 액트 2의 아케인 생츄어리에 등장하는 퀘스트 몬스터인 소환술사로 타락한다.

● <디아블로> 1편의 NPC들도 대접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무기 수리를 하던 대장장이 그리스월드는 트리스트람이 파괴된 뒤, <디아블로 2>에서 데커드 케인을 구출하기 위해 찾아온 플레이어를 습격하는 우두머리 좀비 몬스터가 됐다. 갬블링을 담당한 워트는 아예 시체가 되어 2탄에 출연한다. 워트의 시체를 클릭하면 나오는 ‘워트의 의족’은 <디아블로 2>의 카우 레벨을 여는 데에 쓰였다. 이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의 다른 게임에서도 워트의 이름을 딴 개그 아이템들이 등장하기도.

● <디아블로 2>의 주인공들 중에 후속작인 <디아블로 3>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정보로만 보면 ‘야만용사’로 불리는 바바리안뿐이다. 다행히 1편의 주인공들처럼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시나리오 상에서 그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2탄에서 많은 바바리안이 죽었고, 고향마저도 잃은 것. 그 탓인지 <디아블로 3>에 등장하는 바바리안들은 전작과는 달리 고향 없는 유랑민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작보다 훨씬 늙은 모습으로 다시 악마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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