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기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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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기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양윤정 기자
  • 승인 2016.10.31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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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 부르는 영화들을 보면 가끔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지금은 보기 힘든 음향기기들이 나온다. 흑백 영화 속 축음기, 벽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전축, 카세트테이프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녹음하는 팬의 모습. 8,90년대를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그 당시 음향기기 시장은 레코드, 카세트테이프, CD 등 음원 저장 매체에 담긴 음악을 재생하는 제품들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제품들은 뒤로 물러나고 무선 통신 기술을 탑재한 음향 기기들이 주목받고 있다. 언제 이렇게 변해왔을까. 음향기기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PART1 음향기기의 발자취

초기엔 레코드를 재생하는 축음기나 전축과 같이 부피가 큰 기기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기술의 발달로 음원 저장 매체가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고 가벼워지자, 이에 맞춰 들고 돌아다니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이다.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워크맨과 CD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이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어폰도 점차 보편화됐다.

 

변화의 시작, MP3 플레이어

워크맨의 인기도 잠깐, 2000년대 초반 음원 파일이 담긴 매체가 아닌 음원 파일 자체를 재생하는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음향기기는 물론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CD를 구매하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음악 파일을 다운받았으며,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공유 사이트들이 성황이었다.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낮았을 뿐더러 이와 관련한 법률도 제대로 제정되지 않아 불법으로 노래를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음악 시장이 점차 성숙해지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악을 듣고 파일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대형 음악 사이트들이 성장해 나갔다.

MP3 플레이어는 음원 저장매체를 일일이 들고 다니며 다른 음악을 듣고 싶을 때마다 매체를 교체해야 했던 기존의 음향기기와는 달리 미리 다운로드 받는 파일이 있다면 원하는 가수의 원하는 음악을 바로 선택해 들을 수 있었다. 편리함과 휴대성 모두 우위에 있는 MP3 플레이어가 음향기기 시장의 주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

승승장구하고 있던 MP3플레이어를 밀쳐낸 것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진 음악 재생 서비스인 스트리밍은 PC로 음악을 듣기 위한 서비스에 불과했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음원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휴대폰으로 옮겨야했다.

하지만 음악 사이트 자체가 애플리케이션으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와 버리자 굳이 파일을 다운받아 옮기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거기다 갑자기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면 바로 검색해 재생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음악 소비 방식도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 버렸고, ‘멜론’, ‘지니’ 같은 대형 음악 사이트들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있다. 스마트폰 자체에서도 음향 전문 기업들과 협업을 하는 등 더 나은 음악 감상 환경 조성을 위해 개발을 거듭하니 스마트폰을 대체할 음악 재생기기는 아마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대세는 블루투스 스피커

이제 아무런 제약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더 좋은 음질과 빵빵한 출력 혹은 여럿이서 함께 음악을 즐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직접 귀에 착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소리가 퍼지면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살릴 수 없었고, 스마트폰에 내장된 작은 스피커로는 다 같이 음악을 듣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내장된 블루투스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 불편한 선도 없으며 스마트폰 내장 스피커의 아쉬운 점을 채워주고 다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으니 블루투스 스피커가 주목을 받고 시장이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블루투스가 음향기기 시장 전체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블루투스 음향기기 시장은 2014년 780억 원에서 2015년 1,160억 원으로 크게 성장했고, 지속적인 수요 증가로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피커의 완전체: 인공지능 스피커

▲ SK텔레콤에서 출시한 NUGU. 개인비서를 자처한 NUGU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부르며 “음악을 들려줘”라고 말하면 대답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외에도 날씨나 일정을 알려주고, 전용 앱으로 홈 스마트 기기를 연동시키면 NUGU를 통해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다.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개발된 휴대폰은 카메라, 인터넷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못 하는 일이 없는 만능 스마트폰이 돼 버렸다. 스피커도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음악 감상 외의 즐거움을 위한 기능들이 하나둘씩 더해지면서 만능이 되길 꿈꾸고 있다.

지난 8월 31일 중구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SK텔레콤은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피커 형태의 스마트 기기 ‘NUGU’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인테리어용으로 손색없는 디자인, LED, 보조 배터리, 방수, 시계, 알람 등 일상생활에 한 층 더 녹아들 수 있도록 여러 기능을 탑재하며 진화를 거듭했던 스피커가 이제 인공지능과 결합한 형태까지 왔다. 이미 외국에선 구글과 아마존이 인공지능 스피커 ‘홈’과 ‘에코’를 출시한 바 있으며, 국내에선 SK텔레콤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와 KT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스피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PART2 선이 사라진 이어폰

인공지능까지 진화한 스피커, 그럼 이어폰의 상황은 어떨까? 이어폰은 스피커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작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귀에 직접 착용해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스피커처럼 LED나 시계 같은 시각적인 기능을 탑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어폰은 새로운 기능을 더 추가하기보단 골칫덩어리인 선을 정리했다.

 

이어폰도 블루투스다

이어폰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엉켜있는 선을 풀면서 짜증을 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궁금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꼬여있는 선은 이어폰을 어떤 식으로 보관하던 제대로 풀려있었던 적이 없다. 선을 깔끔히 풀고 나가도 문제는 생긴다. 사람이 많은 출근길 지하철, 이 가방에 걸리고 저 가방에 걸리고 심지어 내 옷에 달린 단추에까지 걸리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이 나왔다. 드디어 선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대부분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의 단점 때문인데 무선 연결의 불확실성과 짧은 배터리 지속시간, 일일이 충전해야 하는 귀찮음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운동 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원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귀엔 유선보단 블루투스 이어폰이 많이 꽂혀있다. 선의 거추장스러움은 몸을 얼마나 움직이는가에 비례하기 때문에 특히, 몸을 과격하게 움직여야 할 경우 유선 이어폰은 방해만 될 뿐이다. 배터리 지속시간이 짧아도 2~3시간이면 충분한 운동을 할 수 있고, 방진방수의 스포츠에 특화된 블루투스 이어폰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는 박 모 양(24세, 여)은 “동영상을 보며 운동을 하기 위해 샀는데 만족한다”며 “생각보다 음질이 나쁘지도 않고, 스마트폰과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연결 상태도 좋아 운동을할 때면 꼭 사용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시기상조인 선과의 완전한 이별

최근에는 양쪽 이어폰 본체를 이어주는 선마저 없앤 코드프리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그동안 이어폰/헤드셋 시장에 소극적이었던 삼성전자가 지난 7월 코드프리 블루투스 이어폰 ‘기어 아이콘 X’를 출시하면서 무선 이어폰/헤드셋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고, 애플도 곧이어 10월 말 코드프리 이어폰 ‘에어팟’ 출시를 발표했다.

▲ 삼성전자의 기어 아이콘 X.

기어 아이콘 X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시장에 나왔다. 운동 중엔 유선보다 블루투스 이어폰이 적합하다는 장점을 살려 스포츠용 스마트 밴드처럼 걷거나 뛰어온 거리, 속도, 시간과 칼로리 소모량 등 체계적인 운동을 위한 정보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탑재했다. 또한, 자체 메모리로 최대 1,000곡까지의 음원 파일을 담을 수 있어 스마트폰을 소지할 필요 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이 20만 원대로 비싸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음질도 괜찮고, 같은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스마트밴드 기어핏2와 연동해 최적의 운동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성능 면에서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기어 아이콘 X지만 운동 이외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역시 배터리 지속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다. 최대 4시간 지속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2시간도 채 되지 않을 수 있고, 본체가 워낙 작아 어딘가에 떨어뜨리거나 보관을 소홀히 할 시엔 잃어버리기도 쉽다.

▲ 애플의 에어팟.

에어팟은 애플의, 애플에 의한, 애플을 위한 무선 이어폰이다. 애플은 이어폰 단자를 없앤 아이폰7을 출시함과 동시에 전용 이어폰인 에어팟을 선보였다. 애플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W1 칩이 삽입된 에어팟은 별도의 페어링 작업을 할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으며, 애플의 다른 기기들과의 연동으로 무한한 확장성이 예상되지만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미국의 유명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담배꽁초를 귀에 꽂고 있는 것 같다”며 디자인을 꼬집었고, 인기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이 춤을 추다 귀에 꽂았던 에어팟이 떨어지자 다시 에어팟을 사러 가는 패러디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애플의 CEO 팀 쿡이 미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운동 등 일상생활을 해봤지만 에어팟은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의 걱정은 계속되고 있다. 가격이 약 22만 원으로 망가지거나 분실할 경우 다시 사기도 만만치 않아 ‘혁신’이 아닌 ‘상술’이란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기어 아이콘 X와 에어팟, 코드프리인 두 제품 모두 비싼 가격과 분실의 위험, 배터리 문제로 유선 이어폰의 대체품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에어팟의 비난이 유독 거센 이유는 피트니스 매니저로서 ‘운동용’을 강조한 기어 아이콘 X와 달리 정말로 유선 이어폰을 대체할 목적으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4일 시장조사기관 NPD가 상반기 미국 이어폰/헤드폰 매출 중 블루투스 제품의 점유율이 54%로 조사돼 처음으로 유선을 뛰어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나날이 커지고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 시장에 발맞춰, 애플은 아이폰의 디자인과 기능 개선을 위해 과감히 이어폰 단자를 없애 버리고 독자적인 무선 통신 칩셋까지 개발하면서 야심차게 무선 코드프리 이어폰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우려에 에어팟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액세서리 케이블이 출시되고 있다. 무선 이어폰의 치명적인 단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고, ‘유선보다 비싸다’ ‘유선보다 음질이 떨어진다’ 등의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무선 이어폰이 유선 이어폰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PART3 떠오르는 와이파이

▲ LG전자의 와이파이 스피커 NP8740. 가격은 30만 원대.

손실된 음악 파일인 MP3나 CD 음질인 WAV 파일로 음악을 듣던 사람들이 점점 더 고음질로 음악을 듣길 원하고 있다. 고음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음악 사이트에서 무손실 음원 파일인 FLAC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블루투스로 연결해 이어폰과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 무손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블루투스가 음질 저하의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투스 연결로 음원 파일을 전송하면 온전한 파일이 그대로 전달돼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압축된 음원 파일의 압축을 풀어 블루투스로 페어링 된 두 기기가 모두 지원하는 코덱으로 다시 압축한 뒤, 그 압축된 파일을 전송한다. 한번 뜯어내고 다시 포장하는 셈이니 그 과정에서 음질이 손상된다. 재압축 시 음질 손실을 최대한 막기 위해 aptX, AAC 코덱이 개발됐지만 CD 수준에 그쳐 무손실 음원을 그대로 전달하기 힘들다.

이런 음질 저하 외에도 블루투스가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다른 무선 통신 기기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역이라 혼선으로 인한 끊김 현상도 종종 일어난다. 블루투스의 한계가 보이자 그 대안으로 와이파이가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와이파이?

와이파이의 대역폭은 블루투스의 약 40배로 블루투스가 지원하지 못하는 고음질의 음원을 무리 없이 전송할 수 있다. 당연히 전파 혼선도 적다. 전화가 와도 음악이 멈추지 않고, 와이파이가 터진다면 거리의 제한 없이 컨트롤 가능하니 블루투스 보단 와이파이 쪽으로 눈길이 더 가지만 ‘이제는 와이파이 음향기기의 시대가 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한 음향기기 업체 관계자는 “간혹 와이파이 스피커를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수요가 적고, 가격대가 높아져 진입 장벽이 높다”고 말한다. 음향기기에 와이파이 기술을 적용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고, 고음질을 많이 찾는다고 해도 비싼 음향기기를 사면서까지 무손실의 음원을 그대로 듣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역폭이 넓다고 해서 끊김 현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공개된 와이파이를 사용하면 잘 끊기는 것과 같이 만약 같은 공유기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면 끊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블루투스의 진화는 계속된다

지난 2015년 11월, 블루투스 규격을 총괄하는 ‘블루투스 SIG’가 차세대 블루투스 정보를 공개했다. 기존 블루투스의 5~10m 정도 되는 신호 전달 거리를 4배 확장하고, 100% 향상된 전송 속도, 블루투스 기기들의 네트워크 형성 등 상당 부분 개선된 블루투스가 출범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계는 분명 있지만 그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노력하는 블루투스를 좀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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