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다양화, 방법의 진화 - 3D프린터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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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의 다양화, 방법의 진화 - 3D프린터가 가야 할 길
  • 정환용 기자
  • 승인 2016.03.07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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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전략 기술

3D프린터의 보급은 느리지만 조금씩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이런 걸 출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준에서 이젠 출력물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출력물의 품질도 나아졌다. 출력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종류의 다양화도 포함된다. 아직은 ABS가 가능 소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곧 액체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3D프린터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본 사진처럼 인간의 신장을 출력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생체조직을 이용해 인공 신장을 3D프린터로 인쇄하는 장면. 출처: 파퓰러 사이언스, www.popsci.com)

 

가트너에서 발표한 2016년 10대 IT 전략 기술 중 3D프린터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은 약간 의아했다. 이미 지난 2014년에 3D프린터 시장이 오는 2018년 약 13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3D프린터 시장의 성장세는 지난해 약 22억 달러로 2010년 대비 30% 가량 성장했지만, 가트너의 예측처럼 가파르지는 않은 상태다.

가트너가 집중한 것은 3D프린터 자체가 아니라 프린터에 쓰이는 소재와 형식이었다. 현재 대부분이 ABS와 같은 플라스틱 소재인 것에 반해, 산업용 3D프린터에서 사용되는 니켈 합금, 탄소 섬유, 유리, 전도 잉크, 생물학적 소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한적이었던 3D프린터의 활용 분야가 항공, 의료, 자동차, 에너지, 군대 등으로 확장되며 사용자 수요가 커지고 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사장인 데이빗 설리의 “향후 20년간 소재의 확장, 속도의 향상, 복합 파트의 출력 및 조립을 위한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 크게 믿음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요와 시장 규모, 그리고 앞으로 소재의 확장으로 인한 규모의 성장을 예상해 보면, 적어도 지금까지 3D프린터가 해왔던 것이 준비운동 수준이었다고 인식하기엔 충분하다.

 

지지부진한 3D프린터 시장, 방향을 전환하다
지금까지 3D프린터 시장의 성장이 2010년대의 예측과 달리 의외로 더뎠던 것은, 출력물의 품질 대비 활용도가 생각보다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물론 SLS(Selective Laser Sintering) 방식처럼 필드에 적층된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굳히는 방식처럼 정밀한 출력물을 얻을 수 있는 프린터도 있지만, 개인이나 중소 사무실에서 활용할 수 없는 고가의 기기나 재료들 때문에 보편적으로 보급되기는 어렵다. 공학이나 의학 등의 분야에서도 3D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는데, 역시 문제는 유지비다. 아직은 같은 결과물을 기존의 방식대로 제작하는 것이 3D프린터로 만드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굳이 3D프린터로 만들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이런 문제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3D프린터 업계는, 대부분의 특허가 만료된 시점에서 시장의 성장 방향을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지금처럼 출력물의 적당한 품질을 저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는 보급형 제품의 활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까지의 생산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의 생산에 대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우주선과 항공기 조립에 사용되는 금속 부품을, 텅스텐 합금 재질로 3D프린터로 출력했다고 공개했다. 텅스텐은 열전도성이 높아 3D프린터 소재로 적합하지 않지만, 출력에 적절한 합금 소재로 변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영국의 방산업체 EADS는 초대형 여객기 A380의 경첩을 DMLS(Direct Metal Laser Sintering, 금속 레이저 소결) 방식으로 생산했다. 아래의 사진과 같은 형태로 제작됐는데, 이는 기존 제품보다 금속의 양을 절반만 사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생산 방식으로는 이와 같은 구조의 제품을 만들기 쉽지 않은데, 출력물의 형태에 자유로운 3D프린터이기에 가능했다.

 

에어버스 A380에 사용된 경첩. 3D프린터로 제작됐다.

 

이처럼 3D프린터 시장은 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ABS 소재를 FDM 방식으로 쌓아나가는 가장 보편적 형태의 제품을 계속 활성화하는 것이다. 노즐의 개선을 통해 출력 정밀도를 더욱 높이고 소재의 다양화 및 가격 저하로 보급을 원활이 하는 것이 과제다.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3D프린터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분야로의 진출인데, 이는 재료비, 유지비 등의 가격과 더불어 품질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 개인이나 소규모 단위보다는 기업 단위로 진출하는 것이 옳다.

 

다양해지는 소재들
지난 2014년 킥스타터에서 저가형 SLS 방식의 3D프린터를 생산하기 위한 모금을 시작한 ‘Norge Systems’란 곳에서, 데스크톱 크기의 ‘Ice1’과 풀사이즈 프린터 ‘Ice9’을 만들었다. Ice1으로 20x20x25cm 크기의 출력물을 만들 수 있고, Ice9은 30x30x45cm 크기까지 제작이 가능하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인데, 플라스틱 파우더를 비롯해 유리와 탄소섬유가 포함된 폴리아미드 파우더, 폴리우레탄 파우더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올해 출시 예정인 ‘IceM’으로는 알루미늄과 나일론의 혼합물 알루마이드, 티타늄, 강철 등의 소재를 사용할 수있다고 한다. Ice9의 가격은 한화 약 3,400만 원 가량으로, 비슷한 크기의 결과물을 출력하는 다른 브랜드의 가장 저렴한 SLS 3D프린터의 가격이 2억 원 정도이니 무척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Norge Systems가 개발한 SLS 방식의 3D프린터 ‘Ice1’과 ‘Ice9’. 한화 약 1,300만 원으로 책정된 Ice1은 킥스타터에서 약 850만 원을 후원하면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하버드의 루이스 교수 팀이 개발한 3D프린터 ‘Voxel8’은 두 개의 노즐을 사용한다. 하나는 평범한 플라스틱을 사출하고, 다른 하나는 전도성 잉크를 사출한다. 전도성 잉크는 전자회로를 그릴 수 있는 소재인데, 이것은 이제 3D프린터로 PCB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루이스 교수는 이미 이 3D프린터로 초소형 드론을 제작한 바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농담처럼 얘기하던 “3D프린터로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나요?”에 대한 대답이 “예”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실제로 현재 우주선에 3D프린터와 출력 소재를 잔뜩 실어 보내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미 우주선의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부품 중 하나인 연료분사장치를 3D프린터로 완성해낸 바 있는 NASA는, 최소한의 부품을 실은 우주선을 발사하고 필요한 부품은 우주에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3D프린터를 활용하는 궁극의 목표라고 언급했다. 소재의 고정이나 우주 공간에서의 출력 환경 등을 개선할 수 있다면, 우주선의 부품이 파손되거나 고장이 나도 곧장 같은 부품을 제작해 수리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12월 NASA는 로켓 엔진 전체를 3D프린터로 제작해 약 9톤급의 추진력을 내는 연소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NASA는 금속 재료와 레이저 합금 기술을 이용해 제작 기간을 줄이고 부품 수도 기존의 엔진보다 45% 줄일 수 있었으며, 1년 가까이 걸리는 연료 밸브의 제작 기간도 절반 가까이 단축시켰다고 전했다.

 

국내 최초의 DLP 방식 3D프린터 개발사인 캐리마 역시 일본의 소재기업과 손을 잡고 의료용 3D프린터 시장 선점을 위한 신소재 개발에 착수했다. 또한, 미국의 제조사 메이커봇은 기존의 PLA 수지에 나무, 석고, 철 등의 질감을 낼 수 있는 신소재 필라멘트를 선보여 출력물의 활용 범위를 넓힌 바 있다. 호주의 과학센터 ACES에서는 외부 자극의 영향으로 출력물의 형태가 변형되는 4D프린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뜨거운 물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차단하는 밸브로, 마치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것처럼 출력할 수 있다.

 

 

스포츠의류 업체 아디다스도 3D프린터로 운동화를 만드는 계획 ‘퓨처크래프트 3D’를 공개했다. 신발의 밑창을 사용자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 UC리버사이드의 미히리 오즈칸 교수는 3D프린터에 설탕과 다공성 탄소소재를 투입해 물 속의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스폰지를 만들었다. 실내 수영장 등 오염이 우려되는 장소에서 20번 이상 재사용할 수 있으며, 1g당 제작비용이 15센트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고. 오즈칸 교수는 3D프린터가 없었다면 이 제품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3D프린터가 개인과 산업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양화’에 달려 있다. 가장 보편적인 플라스틱 사출 방식의 개선과 유지비용의 안정, 그리고 산업에서의 활용을 위해 소재가 다양해지고 출력 방식이 진화하는 것이 지금의 추세다. 3D프린터 제작에 필요한 대부분의 특허 기간이 만료돼 누구나 새로운 소재와 방식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3D프린터의 출력물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 활용할 출력물을 뽑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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