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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PC사랑 20주년 특집기획 - 전화 20년

수많은 폰생(phone生)을 산 한 기기 정환용 기자l승인2015.08.05l수정2015.08.0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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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상당히 감명 깊게 감상한 영화 ‘노예 12년’의 카피를 패러디해 봤는데, 그리 만족스럽진 않다. 연속 수록하고 있는 20주년 특별기획, 이번 호의 테마는 ‘휴대전화’다. 우연히 기자가 처음 휴대전화를 쥐어본 것이 1995년 즈음이니, 20년이란 타이틀과도 연관지어 봤다. 당시 전화기는 네모난 픽셀 하나하나가 모두 보일만큼 투박한 LCD 디스플레이 한 줄이 화면의 전부였는데, 지금은 1평방인치 당 400개가 넘는 픽셀이 집적된다. 전화기로 할 수 있는 일도 과거엔 말 그대로 전화 통화에 충실했고 알람 기능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다이어리부터 게임까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수백 가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20~30가지 정도의 기능만을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을 만큼, 20년 만에 개인 휴대전화는 빠른 속도로 진화해 왔다.

현재의 휴대전화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정체를 겪고 있다. 차세대 통신망으로 알려졌던 LTE는 사실상 전화와 인터넷 모두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고, LTE 스마트폰이면서도 전화 통화를 할 땐 3G로 전환되는 굴욕을 안고 있다. 통신사들은 발빠르게 LTE 광고에서 ‘4G’란 말을 넣었다가 빼며 고객들을 착각하게 만들었고, 결국 ‘진짜 4세대’ 통신망인 LTE-A는 제대로 언급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전화기의 목적인 전화 통화는 그대로 두고, 사람들이 혹할 만한 인터넷 서비스만 LTE로 바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세대교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다.

통신 3사가 서로 ‘세계 최초’를 외쳐대며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그 실상은 달콤한 말로 고객을 꾀어내 속은 바뀌지 않은 개살구를 팔아댄 것에 불과하다. 오는 8월부터 음성전화도 LTE 통신망을 이용하는 VoLTE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보급하겠다고 했으니, LTE 서비스는 이제야 준비가 끝나간다고 봐야 하고, 이를 광고하려면 3년 전이 아니라 지금부터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굳이 필수가 아닌 서비스 이용을 하지 않고 3G 휴대폰을 유지했을 테니까.

통신사들의 눈속임 행위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비난은 이쯤 하자. 1995년 당시의 휴대폰부터 발전사를 살펴보며 2015년 최신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까지 오려면 갈 길이 멀다.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통신망의 세대교체, 그리고 기자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전화기를 기준으로 언급하겠다.

 

‣ 아이폰3Gs 이전 제품들은 고화질의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작은 사진을 확대했다. 화질이 좋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

 

첫 경험(?) – 모토로라 마이크로택 9800X


숫자와 알파벳이 표현되는 한 줄의 액정, 고무로 된 버튼, 묵직한 배터리의 무게 등 지금 생각하면 투박하기 짝이 없는 형태였다. 첫 인상은 신기함이 버무려져 나쁘진 않았지만, 1년여 만에 통화 버튼의 고무가 찢어진 걸 기억해 보면 제품의 내구성이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다. 전화기 자체의 기능도 몇 개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당시 이동통신 서비스는 AMPS(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방식으로,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통신 표준 시스템이었다. AMPS는 200KHz에서 800MHz까지의 주파수 대역폭 중 하나를 골라 음향 신호를 변형해 통화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초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로 바뀌었고, 이는 2008년 완전히 서비스를 중단하기까지 널리 사용돼 왔다.

엄연히 따지면 ‘기자의’ 첫 전화기는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이게 뭔지 아느냐’며 손에 들려주신 것이 기자의 첫 경험인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기자는 새로운 기술이나 IT 분야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묵직한 걸 들고 벌을 서라는 건가’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별안간 ‘따르릉’ 소리가 났다. 이전까지 자동차에 부착된 카폰은 봤지만 휴대 개념의 전화기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플립 형태였던 전화기의 아랫부분에 스티커로 약 80만 원대의 가격이 붙어 있었던 것 같다.(이걸 보면 컴퓨터처럼 전화기 가격도 비슷하게 형성된 것 같긴 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모토로라를 필두로 삼성전자에서도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그 전파 속도는 매우 느렸다. 지금의 약정 개념이 없었던 때였고, 통신사 역시 가입자가 많지 않아 지금처럼 전국에 기지국을 세울 수도 없었다. 당시의 휴대폰 앞 번호는 01X였고, 5개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각 하나씩을 점유했다. 011은 한국이동통신(이후 SK텔레콤이 인수), 016은 KT, 017은 신세기(이후 SK텔레콤이 인수), 018은 한솔, 019는 LG가 각 사용했다. 이 중 011과 017은 ‘핸드폰’이라 불렀고 나머지는 PCS라 불렀는데, 이는 두 그룹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2000년 초반 011과 017의 합병, 016과 018의 합병 이후 SK텔레콤, KT, LG의 통신사 3파전이 시작됐다.

 

1996년 – LG전자 화통

발췌: 1995년 9월 28일(목요일) 매일경제


위의 모토로라 벽돌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큰 편이었던 이것은 LG전자가 휴대폰 시장 진출을 선언한 교두보 ‘화통’이었다. 당시 기자의 어머니가 첫 휴대폰으로 이 제품을 구입해 약 3년여 동안 사용하셨다. 1995년 당시의 신문 기사 사진을 보면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바 형태였는데, 정확히는 저 모델과는 약간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약 80만 원대였던 기기 값을 약정이 아니라 할부로 치르고 구매하셨다고 한다. 전화기의 수신부를 위로 올려야 잠금이 해제되며 전화를 쓸 수 있었는데, 이 사진을 구하지 못해 위 사진으로 대체했다.

처음 이 휴대폰을 샀을 때만 해도 주변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어른들은 많지 않았고, 하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휴대폰보다는 호출기가 대세였다. 기자도 숫자 두 줄이 표시되는 모델을 중학생 때부터 4년 가까이 사용했다. TV에서는 호출기보다 휴대폰 광고가 조금씩 많아지던 시절이었다. 전화기의 액정은 세 줄로 늘었지만 여전히 한글은 표기할 수 없었다. 이동통신망은 여전히 디지털 AMPS였고, 이 시기에 한국이동통신이 새로운 서비스인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서비스를 시작했다. CDMA는 코드를 이용해 여러 사용자들이 하나의 셀에 접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반 정보 전송의 대역폭보다 훨씬 큰 대역폭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한국이동통신에서 세계최초로 국내에서 상용화했고, 이후 신세기이동통신도 CDMA를 도입해 국내에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1998년 – LG전자 어필

사진 출처: 플로렌스의 네티하비 블로그


당시에도 두꺼웠던 기자의 두 손가락으로 LG전자의 PCS ‘어필’을 들면, 손가락 뒤에선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1998년 당시의 휴대폰은 누가 더 작게 만드는지에 혈안이 돼 있었고, 그 중에서도 상당히 작은 크기를 자랑했던 것이 기자의 누님이 사용했던 이 전화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한 반에 10명이 채 안 되던 때였다. 크기가 작아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좋고 배터리도 상당히 오래 지속됐던 기억이 난다.

바 형태였던 휴대폰의 형태를 버튼이 가려지는 플립 형태로 전환되던 것이 당시의 추세였다. 바 형태의 경우 주머니에 넣어뒀을 때 잘못 눌리는 현상이 비일비재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측면의 버튼을 눌러야 켜지는 등 다양한 기능들이 나왔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버튼이 눌리지 않게 가리면 되지 않냐’는 식의 솔루션이 플립 형태였고, 이는 곧 대부분의 휴대폰이 플립 형태의 신제품을 쏟아낼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2000년 – LG전자 싸이언 이지폴더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기자의 친구에게 가장 큰 부러움을 느낀 것은, 걸면 걸린다는 폴더폰 ‘걸리버’였다. 나름 얼리어답터였던 친구는 플립 형태가 아니라 폴더 형태의 새로운 모양으로 큰 화제였던 최신 휴대폰을 장만했었다. 당시 뉴스에선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2500만 명이 넘었다, 2600만 명을 넘었다고 연신 보도했다. 이 시기에 불거진 것이 논란의 ‘보조금 제도’였는데, 휴대폰과 PCS로 양분돼 있던 휴대폰 시장에서 PCS를 휴대폰보다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는 조건이 많아 가입자가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 통신망은 2G였고, 휴대폰으로 접속하는 인터넷은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인 인트라넷 수준이었다.

 

2004년 – 팬텍 IM-7400

광고 카피 ‘It’s different’를 기억하는가? 군에서 전역한 기자가 휴대폰을 사러 동네 매장을 들어가자마자 본 광고 포스터의 카피다. 처음 들어본 브랜드의 이름은 ‘SKY’,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손에 쥐고 나온 것이 ‘IM-7400’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수신부가 180도 회전하는데, 전면에 수신부, 후면에 카메라가 배치돼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전 세대까지의 휴대폰 기능 트렌드가 ‘음악’이었다면, 2004~2005년에는 그 대상이 카메라로 돌아왔다. 휴대폰으로 ‘셀프카메라’를 찍어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젊은이들의 필수 덕목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당시의 통신사는 017의 신세기가 011에 인수되고, 018의 한솔이 KT에 인수됐지만, 번호의 앞자리는 여전히 5가지로 유지되고 있었다. 2004년부터 통신위원회가 이동전화 식별번호를 010으로 통합하기로 했으나, 휴대폰 사용자의 대부분은 기존 가입자였고, 새로 가입해 번호를 생성하는 신규 가입자들만 이 시기에 010 번호를 받았다. 이는 정보통신부가 상정한 결정으로, 당시 가장 높은 가입자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SK텔레콤은 반대, KT와 LG텔레콤은 찬성의 입장이었다. 

 

2007년 – 팬텍 IM-U160

당시 팬텍의 TVCM은 상당히 독창적이었다. 별명이 ‘붐붐폰’이었던 기자의 다음 휴대폰 ‘IM-U160’의 광고도 재미있었는데, 터치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됐던 것을 특징 삼아 바이크의 액셀을 당기는 것처럼 휴대폰으로 붕붕 소리를 내던 것이 기억난다. 터치에 익숙지 않거나 아날로그 버튼처럼 ‘똑딱’ 누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거 금방 고장난다’며 곱지 않게 바라보기도 했지만, 2년 6개월간 사용하며 고장으로 서비스를 받은 것은 변기통에 빠뜨렸을 때 말고는 한 번도 없었다.

이 시기가 휴대폰에 터치 인터페이스가 본격적으로 구현되던 때였다. 2005년 출시 이후 1천만 대가 넘게 팔린 ‘초콜릿폰’이 그랬고, 이후 대부분의 휴대폰이 키패드를 제외한 컨트롤 키 입력 방식을 터치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정전기 방식이 아닌 압력식이었는데, 그저 버튼에 압력을 주기만 하면 됐고, 정확하거나 큰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정전기 방식보다 오타는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다만 일부 기능에 따라 밖에 노출된 터치 버튼이 주머니 속에서 시도때도 없이 눌리는 단점은 있었다.

 

휴대폰의 진짜 지배자 – 퀄컴

이쯤에서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자. 당시 휴대폰을 사용했던 독자라면, 거의 대부분의 휴대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Qualcomm’이란 문구와 로고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스마트폰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모바일 프로세서 제조사 퀄컴이다. 1985년 설립된 퀄컴은 주로 통신 기기의 부품과 회로였고, CDMA가 상용화되며 송신 기지와 칩을 제조해 모바일 산업의 공룡이 됐다. 퀄컴은 이후 3세대 통신서비스 W-CDMA까지 명성을 연장하며 다양한 관련 특허를 보유해 현재에 이르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역사가 될 줄 알았던 퀄컴은, 금새 ‘스냅드래곤’이란 효자를 만들어 시대에 발을 맞췄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거의 대부분의 안드로이드폰에 스냅드래곤이 적용될 정도로 과거 못지않은 영광을 이어나갔고, 점유율 자체는 피처폰 시절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1위의 왕좌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SA에선 2014년 모바일 AP 점유율에서 퀄컴이 52.9%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으니, 인텔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퀄컴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 애플 아이폰 3Gs

2008년경 ‘아이폰’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미국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휴대폰이 나왔는데, 국내에는 출시가 안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 알아보니 상황에 따라 완전 무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인 ‘Wi-Fi’ 기능의 제거 여부 때문이었다. 당시의 ‘루머’에 따르면, 2009년까지도 국내 휴대폰의 인터넷은 통신사의 값비싼 자체 서비스였고, 통상적으로 부르는 인터넷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폰은 전화기 자체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주변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면 무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충분히 해당 루머를 루머가 아니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국 2009년 SK텔레콤은 합의에 실패하고, KT는 기능 변경 없이 국내 수용 의사를 밝혀 KT를 통해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왔다. 2년 넘게 사용한 붐붐폰이 슬슬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을 때여서 기자는 고민 없이 예약을 했고, 국내 최초 아이폰 가입자보다 며칠 늦게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신세계가 시작됐다. 정말로 PC에서나 접속할 수 있었던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휴대폰으로 접속할 수 있었고, 그밖에도 카메라와 연동된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은 주말에 일부러 서울로 외출하게 만들었다. 애플리케이션이란 개념도 처음이었고,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도 놀라웠다. 스마트폰의 가장 큰 특징인 무선인터넷과 정전식 터치 방식은 충분히 새로웠다.

아이폰 3Gs를 구입할 때 KT에 처음으로 데이터 사용요금 개념이 생겼다. 3G 통신망은 전화와 인터넷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고, 정해진 데이터 용량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요금제도 처음 생겼다. 기자는 처음에는 월 500MB 약정을 신청했고, 두 달 뒤 1GB로 용량과 기본 요금을 올렸다. ‘스마트폰’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기에 월 500MB는 너무 적었다. 또한, 무선공유기가 지금처럼 널리 보급된 것도 아니어서 데이터 사용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폰의 국내 도입 이후 삼성이 부랴부랴 아이폰의 대항마로 내놓은 옴니아 2는 당시 윈도우 모바일 OS의 한계로 ‘옴레기’란 지독한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사라져야 했다. 같은 해 6월 출시한 갤럭시 S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 다행이었다. 이후 모든 휴대폰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무르며 시장에 대응하지 않던 노키아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져 갔다.

 

2013년 – 애플 아이폰 4S

당연히 차세대 기술인 LTE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애플은 신제품 아이폰 4S를 3G 통신망으로 연장했다. 통신사들이 TV 광고로 ‘4G LTE’를 목놓아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기존의 HSDPA 통신망에서 한 단계 향상된 3GPP LTE는, 기존의 서비스보다 12배 이상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LTE는 진짜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은 아니다. 당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선 3G가 메인 서비스였고, LTE는 4세대로 기술 발전이 이뤄지는 와중에 지나가는 과정이었다. 엄연히 따지면 3G에 이은 차세대 통신 기술이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3.9G 정도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4G로 홍보하면 안 된다는 룰이 없었다는 이유로 LTE를 4세대 이동통신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당시 TV 광고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SK텔레콤의 홍보 문구가 4G LTE에서 은근슬쩍 4G가 빠진 것을 봤을 것이다. 이는 KT와 LG텔레콤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9월경부터 3사 모두가 LTE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기지국이 확장되기 전까지는 수도권 및 일부 지역으로 매우 한정적이어서 큰 의미가 없었다. 이는 현재 전국으로 확대 중인 LTE-A 역시 마찬가지로, 통신사들은 LTE 서비스가 불필요한 사람들까지 01X 번호를 010으로 옮겨오기 위해 강제로 3G 서비스를 줄여나가는 과정과 연계돼 있다. 3대 통신사의 갑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볼 일이다.

 

2014년 – LG G3

드디어 데이터 뿐 아니라 음성통화도 LTE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스마트폰이라고는 아이폰만 사용해 왔던 터라, 정작 전화 기능은 별 볼 일 없었던 아이폰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차였다. 우연히 스마트폰 한 대를 더 장만할 일이 생겼고,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좌 iOS, 우 안드로이드’ 체제를 구축할 기회에 기자의 눈에 띈 것이 LG G3였다. 이 때 시선을 모으던 것은 기기가 아니라 서비스였는데, 진정한 4세대 통신기술인 LTE-A 적용 스마트폰이 속속 출시되고 있었다. G3는 LTE-A 적용 모델은 아니었지만, 인터넷이나 게임보다는 주로 문자와 전화통화가 목적이었기에 선택을 바꾸진 않았다.

여기서 아이폰 4S의 약정 기간과 신제품의 출시 시기가 겹쳐, 새로 터치ID가 적용되고 크기가 약간 커진 아이폰 5S를 산 것이 기자의 마지막 휴대폰이다. 솔직히 기기가 바뀌어도 스마트폰 사용 기간이 5년을 넘기니, 꾸준히 사용하는 기능은 20여 가지 정도로 압축됐다. iOS와 안드로이드 OS를 동시에 사용해 보겠다는 원대했던 목표도, 그저 업무용/개인용 전화기를 나누는 정도에 멈춰 있다. 음성통화가 전부였던 통신망 서비스는 1080P 화질의 영화 한 편을 1분 만에 다운받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고,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하드웨어의 발전 역시 점점 빨라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온 태블릿PC가 일반 휴대폰과의 조합으로 자칫 스마트폰의 입지를 흔들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리얼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홀로그램, AR 등 스마트폰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았다. 통신 서비스 역시 얼마 전 5세대 이동통신 5G가 2019년에 주파수를 분배해 2020년에 표준화를 완료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앞서 미래창조과학부는 2018년부터 평창올림픽을 기반으로 시범 서비스를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글쎄, 올림픽이나 제대로 치르는 걸 목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앞으로 5년이면 20GB 용량의 FHD 영화 한 편을 약 10여 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다고 하니, ‘어디 한 번 해보시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기다려 보자.


정환용 기자  maddenflower@ilovep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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