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기원:대전액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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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기원:대전액션게임
  • 석주원 기자
  • 승인 2015.06.29 13: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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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동네 곳곳은 물론이고 사람들 좀 모인다 싶은 장소에는 어김없이 게임센터, 이른바 오락실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선 사람들 중 어렸을 적 동네 오락실에서 게이머의 혼을 불태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당시 게임 한 판이 50원이었다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물론 동네마다 가격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1980년대에는 대체로 50원이면 게임을 한 판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1991년 오락실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며, 동시에 오락실 물가를 순식간에 두 배로 상승시킨 전설의 게임이 등장하게 되는데…

 

게임의 시초는 ‘대전’

지금이야 대전액션게임이 하나의 장르로 구분되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장르적인 구분 자체가 희박했다. 애초에 게임이라는 놀이는 탄생 때부터 대전을 기반으로 출발하기도 했고, 당시의 기술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격투 액션이 등장하는 게임을 개발하기도 힘들었다. 초기 게임들에서 대전 요소가 강조된 이유는 게이머의 상대가 될 인공지능을 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 요소가 포함됐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대전액션’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시대에 장르화 된 대전액션게임은 대전을 전제로 하는 액션게임 중에서도 1대1 격투를 중점으로 하는 게임들을 지칭하고 있다.

 

▲ 따지고 보면 게임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 는 ‘퐁’ 역시 대전게임이었다.

 

▲ 최초의 대전액션게임 ‘헤비급챔프’의 아케이드 머신.

1976년 세가에서는 아케이드용으로 ‘헤비급 챔프(Heavyweight Champ)’라는 대전형 게임을 출시했는데, 대체적으로 이 게임이 최초의 대전액션게임으로 여겨지고 있 다. ‘헤비급 챔프’는 흑백으로 그려진 두 명의 복싱선수를 두 명의 게이머가 각각 조작해 대전을 벌이는 게임으로, 글러브 모양의 컨트롤러를 위나 아래로 움직여 펀치를 날리는 간단한 형태의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1987년에 컬러판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검투사를 소재로 한 ‘워리어’라는 게임이 등장했는데,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그래픽과 위에서 내려다 본 탑뷰의 시점이 지금으로선 상당히 낯설게 다가온다.

1981년에 애플II용으로 출시된 ‘드래곤즈 아이(Dragon's Eye)’라는 게임에서는 지금과 같은 사이드뷰 방식의 1대1 전투가 구현되긴 했지만, 이 게임은 RPG였기 때문에 순수한 대전액션게임으로 볼 수 없고, 1982년에 울트라비전이라는 회사에서 출시한 ‘카라테(Karate)’라는 게임에서 본격적으로 맨손 격투가 게임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게임 역시 지금 보면 ‘졸라맨’보다 조금 살이 붙은 조악한 캐릭터들이 대전을 펼치는 게임에 머물렀다.

대전액션게임의 그래픽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은 조던 메크너(Jordan Mechner)가 1984년 출시한 ‘카라테카(空手家)’를 통해서였다. 메크너는 가족들과 함께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가라테 도장에 다니다가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게임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다니던 도장의 사범에게 부탁해 가라테 동작의 사진을 찍은 다음 이를 기반으로 그래픽을 만들었다. 이때 사용된 작업 기법은 로토 스코핑이라고 하며, 간단히 설명하면 모션캡처를 수작업으로 진행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작업은 상당히 손이 많이 가지만, 그 대신 캐릭터들의 동작을 실제와 같이 부드럽게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본래 로토 스코핑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사용하는 기법이었는데, 영화에 관심이 많던 메크너가 캐릭터들의 움직임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 기술을 게임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몇 년 후 조던 메크너는 이 기법을 극대화시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페르시아의 왕자’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 페르시아 왕자’의 개발자인 조던 메크너의 첫 작 품은 대전액션게임인 ‘카라테카’였다. 이 게임은 최종 적으로 50만 장이 판매됐고, 조던 메크너에게 7만 달 러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고 한다.
▲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게이머라면 친구들과 함께 ‘이얼쿵푸’를 즐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본 대전액션게임의 태동

대전액션게임의 역사를 언급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빠질 수 없는 게임이 하나 있다. 사실상 대전액션게임이라는 장르를 확립시켰으며, 게임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버린 작품이 바로 1991년 캡콤에서 출시한 ‘스트리트 파이터 2(이하 SF2)’다.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시리즈 첫 작품도 아니었고, 대전액션게임의 시초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대전액션게임의 근간을 확립한 게임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일본에서 대전액션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미국과 비슷한 시기였다. 1984년에 테크노스재팬의 ‘카라테도(空手道)’, 닌텐도의 ‘어번 챔피언(URBAN CHAMPION)’, 세가의 ‘앗포’가 출시됐고, 1985년에는 반다이의 ‘근육맨: 머슬 태그 매치’와 코나미의 ‘이얼쿵푸’가 출시됐다. 그리고 1987년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이하 SF1)’가 등장한다.

그런데 정작 SF1은 처음부터 대전액션으로 개발된 게임이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시 아케이드 시장의 대세였던 체감형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노하우가 부족했던 캡콤은 원래의 계획을 수정해 간소화된 격투 게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격투게임이 된 이유는 디렉터인 니시야마 타카시(西山隆志)가 자신의 전작인 ‘스파르탄X’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탄X’는 횡스크롤 액션게임이지만, 보스전은 1대1 대전으로 펼쳐진다. SF1은 바로 이 부분을 가져와 1대1 대전에 특화된 게임으로 제작했다. 이전까지의 대전액션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캐릭터는 고정돼 있었으며,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영국, 태국의 대표들과 차례로 대전을 겨뤄 격파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대전액션이라기 보다는 횡스크롤 액션게임의 보스전을 연상시키는 게임성을 갖고 있었다.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공략 가능한 몇몇 특수 패턴을 보유하고 있었고,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적의 공격력이 강력해져서 최종 보스의 경우 필살기를 한 대만 맞아도 체력의 2/3가 날아간다거나 하는 요소들은 대전액션 보다는 일반적인 액션게임에 가까웠다.

 

▲ SF1의 마지막 보스인 태국 대표 사가트. 후속작에서는 가슴에 흉터가 생긴 채로 등장하는데, 이 흉터는 1에서 류의 승룡권에 당한 흔적이라는 설정이다.

 

그럼에도 대전액션게임의 역사에서 SF1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이후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몇몇 요소가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먼저 SF1은 한정적이긴 했지만 사람 대 사람의 대전을 지원했고, 시리즈의 영원한 주인공 류도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른 게이머와 대전을 할 때 1P는 주인공인 류, 2P는 주인공과 성능은 동일하고 외모만 다른 켄을 사용하게 된다. 류와 켄의 대표 필살기인 파동권, 승룡권, 용권선풍각도 여기에서 처음 도입됐으며, 8방향 방향키와 펀치 및 킥 버튼을 조합한 커맨드 입력 방식도 이때부터 이미 사용됐다. 다만, SF1 초기 버전은 체감형 머신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작은 버튼이 아니라 손바닥 크기만 한 대형 버튼 두 개를 장착하고 있었다. 이 버튼들에는 압력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 있어 버튼을 강하게 누르면 강펀치가, 약하게 누르면 약펀치가 나갔다. 나중에 6버튼 기계로 교체되면서 펀치의 강약도 버튼에 따라 대응하도록 바뀌었다.

 

▲ 커다란 두 개의 버튼이 인상적인 초창기 SF1의 아케이드 머신. 국내에서도 SF1을 들여 놓은 오락실이 있었지만, 대부분 이 후기에 나온 6버튼 버전이었다.

 

어쨌든 SF1은 크게 성공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모으면서 후속작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 이에 캡콤의 관계자가 미국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는데, 대전형 게임보다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들이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고 후속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89’, 즉 ‘파이널 파이트’를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거래처에서는 불만을 표시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원했던 것은 사람 대 사람이 대전을 펼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캡콤의 관계자들도 SF1이 가진 잠재력을 눈치 채고 본격적으로 사람 대 사람의 대전에 중점을 둔 후속작 개발에 착수했다.

 

▲ 처음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89’라는 타이틀로 개발됐던 ‘파이널 파이트’. 국내에서는 ‘89’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의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나중에 SF 시리즈에 다시 등장한다.

 

 

패러다임을 바꾼 전설의 등장

1991년 캡콤은 SF1의 정식 후속작인 SF2를 출시했다. 전작의 디렉터였던 니시야마 타카시를 비롯해 제작진 대부분이 교체됐고, ‘파이널 파이트’의 제작진이 상당수 유입됐지만, 캐릭터나 필살기 등 게임의 설정들은 전작을 계승하고 있었다. 선택 가능한 캐릭터는 전작의 류와 켄 이외에도 6명을 추가해 총 8명을 고를 수 있었고,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의 캐릭터를 모두 격파하면 4천왕이라 불리는 보스 캐릭터들과의 대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 전작과 비교해 대폭 늘어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대전액션게임계의 큰 누님이자 영원한 히로인인 춘리도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등장 캐릭터들을 보면 온몸이 녹색인데다 전기까지 방출하는 블랑카라거나 팔 다리가 늘어나고 불을 뿜는 달심 등 다소 과장되고 개그스러운 요소가 도입기도 했는데, 개발 비화를 보면 진지하고 현실적인 설정보다는 게임다운 재미있는 발상을 우선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격투 게임계의 영원한 히로인이자 대전액션게임 역사에서 처음으로 플레이 가능한 여성 캐릭터이기도 한 춘리도 SF2를 통해 데뷔했다.

횡스크롤 액션게임에서 파생됐다고도 볼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본격적인 사람 대 사람의 대인전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SF2는 시스템적으로 대전액션게임을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단순한 공격과 필살기 밖에 없었던 기존의 대전액션게임과 달리 기본기를 활용한 연속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캐릭터별로 특징이 확연히 구분되는 다양한 필살기들과 격투 스타일은 대전의 묘미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았는데, 우선 캐릭터 간의 밸런스가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특정 캐릭터로 일정 패턴만 지속적으로 사용해서 게임을 쉽게 이길 수도 있었고, 이 때만해도 동일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능 좋은 캐릭터를 선점하면 대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또, 버그도 상당히 많은 편으로 게임을 멈추게 하는 버그라거나 아예 화면을 꺼지게 만드는 버그까지 다채로웠다.

 

▲ 그 유명한 가일의 학다리 버그. 대전 중에 사용했다가는 체어샷 맞기에 좋다.

 

▲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SF2. 게임과는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설정은 그대로 따르고 있다.

SF2는 단순히 게임적인 진화 뿐 아니라 게임시장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의 오락실에서는 사람 대 사람이 대전을 벌이는 게임들보다 혼자 혹은 협동 플레이로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 나가는 방식의 게임들이 많았다. 그러나 SF2가 등장하면서 게이머들은 서서히 사람 대 사람이 주는 대전의 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SF2를 가져오면서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게임 비용을 올린 오락실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SF2를 즐기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아마도 게임기 위에 돈을 걸고 순서를 기다리는 문화도 이때쯤부터 형성됐을 것이다. SF2의 인기는 일본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광풍을 일으켰고, 이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상품과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파생 콘텐츠들이 줄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SF2의 엄청난 흥행은 장기적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게임 개발사들이 너도나도 대전액션게임 제작에 뛰어들면서 장르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오락실 업주들 입장에서도 플레이타임이 긴 액션이나 슈팅 장르의 게임들보다 빠르면 1분 이내에 대전이 끝나는 대전액션게임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오락실은 대전액션게임장으로 변해버렸다. 한 때 리듬액션게임이 유행할 때 아케이드 게임센터를 리듬액션게임들이 정복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SF2 이후 수많은 아류작과 새로운 방식의 대전액션게임들이 등장했으며, SF2 역시 기판을 업데이트 하면서 밸런스를 조절하고, 동일 캐릭터 선택 가능, 보스로 등장한 4천왕 캐릭터의 선택 가능 등의 추가 요소를 도입해 인기를 지속해 나갔다. 업데이트 버전이 등장할 때마다 타이틀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SF2 대쉬’, ‘SF2 대쉬 터보’, ‘슈퍼 SF2’, ‘슈퍼 SF2 X’ 순으로 바뀌었다. ‘슈퍼 SF2’에서는 새로운 캐릭터 4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 시리즈 두 번째 여성캐릭터인 캐미도 ‘슈퍼 SF2’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전액션게임 전성시대

1990년대 아케이드 시장은 그야 말로 대전액션게임의 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회사들에서 대전액션게임을 출시했지만, 그 중에서도 SF 시리즈를 앞세운 캡콤의 아성에 근접했던 회사를 꼽으라면 역시 SNK를 들 수 있다. SNK는 1991년 SF1의 제작진들을 영입해 ‘아랑전설’을 출시하면서 야심차게 대전액션게임에 도전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아랑전설’은 라인을 바꾸어가며 싸운다거나 다른 게이머가 난입했을 때 협동으로 인공지능 적을 쓰러트린 후 대전을 펼친다든가 하는 독특한 시스템들을 도입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나빠 SF2의 아류작이라는 평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 첫 작품은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 SNK의 간판이 되는 인기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 ‘아랑전설’.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1992년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용호의 권’을 출시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용호의 권’은 스토리 중시형 대전액션게임으로 1인 플레이시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2명뿐이었지만, 다른 게이머의 난입으로 대전을 펼칠 때는 다른 캐릭터들도 고를 수 있었다. 시스템적으로는 기를 모으는 게이지가 등장했고, 이를 사용한 초필살기의 도입, 양 캐릭터의 거리에 따라 화면이 줌인ㆍ줌아웃 되는 카메라 워크, 데미지에 따른 캐릭터 그래픽 변화 등 참신한 시도들이 인기를 끌었다. 동사의 전작인 ‘아랑전설’과 달리 ‘용호의 권’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세 번째 작품인 외전에서 대차게 말아먹으며 아예 시리즈의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 ‘용호의 권’ 하면 역시 필살기로 막타를 날릴 때 복장 일부가 찢어지는 연출이 백미였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탈의는 한창 때의 10대들을 게임기 앞으로 몰리게 한 일등공신.

 

SNK는 이외에도 본격 칼부림 대전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를 비롯해 다수의 대전게임으로 캡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게임은 단연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이하 KOF)’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 포스터의 문구 그대로 격투신세계를 선보였던 SNK의 KOF94.

KOF라는 이름은 ‘아랑전설’ 시리즈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격투대회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KOF는 ‘아랑전설’의 주인공과 ‘용호의 권’의 주인공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정말 원초적이면서 유치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팬들의 궁금증에 화답하기 위해 이벤트 형태로 개발이 시작됐고, ‘아랑전설’ 시리즈와 ‘용호의 권’ 시리즈의 캐릭터만으로는 부족해 과거 SNK가 출시했던 다른 장르의 게임들에서 캐릭터만 가져와 사용하기도 했고, 스토리의 구심점이 되는 오리지널 캐릭터도 등장시켰다. 그리고 각 작품별로 캐릭터들을 분류해 3명을 한 팀으로 구성한 후 팀대팀이 대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즉 이전까지의 대전액션게임이 하나의 캐릭터로 3전 2선승제였던 반면, KOF 시리즈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캐릭터로 5전 3선승제 방식이 된 것이다. 이 시도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권에서는 SF 시리즈의 아성을 누르고 오락실 최강자로 등극했다.

한편, 1990년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게임 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른바 폴리곤 덩어리라 불렸던 3D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게임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는 대전액션게임의 또 다른 진화를 제시한 게임이었다.

비록 지금 보면 조악한 폴리곤 덩어리들이 등장하는 게임이지만, 당시에는 3D 기술의 발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도 활용됐다.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가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남코의 ‘철권’과 ‘소울칼리버’ 시리즈, 캡콤의 ‘사립 저스티스 학원’ 등 다양한 3D 대전액션게임들이 등장해 2D와는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해 나갔다.

 

▲ 1993년 처음 출시된 ‘버추어 파이터 1’과 2006년 출시된 ‘버추어 파이터 5’. 3D 기술의 발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북미쪽에서도 SF2 이후 대전액션게임이 강세를 보였는데, 국내에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모탈 컴뱃(Mortal Kombat)’ 시리즈다. 미국의 미드웨이 게임즈에서 개발한 ‘모탈 컴뱃’은 누가 봐도 북미향이라는 게 느껴지는 실사풍의 그래픽과 과장되고 잔인한 연출로 국내에서도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또,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요소도 있었는데, 격투 게임 사상 처음으로 버튼을 사용한 가드가 사용됐고, 공중콤보를 구현한 게임이기도 하다.

 

▲ ‘모탈 컴뱃’ 시리즈에서 피가 튀는 연출 정도는 잔인함 측에 끼지도 못한다.

 

 

대전액션게임의 진화와 몰락

1990년대 화려한 불꽃을 피웠던 대전액션게임이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대전액션게임이 진화할수록 시스템적인 완성도는 높아져 갔지만, 그만큼 복잡해졌고 신규 이용자의 접근성은 떨어졌다. 또, 이는 숙련자와 초보자의 실력차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면서 어느 샌가 대전액션게임들은 숙련자들의 전유물화 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 급속도로 증가한 PC방으로 인해 오락실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큰 타격이 됐다. 과거에는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KOF 한 판’ 했던 것이, 이제는 ‘스타 한 판’으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리듬액션게임들이 게임센터를 점령하면서 대전액션게임들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아케이드 시장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 대전액션게임들은 새로운 돌파구로 콘솔 플랫폼을 선택했다. 이전까지는 콘솔게임기들의 성능이 아케이드 머신과 비교해 확연히 떨어졌기 때문에 아케이드 게임을 콘솔로 이식해도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기대할 수 없었지만, 콘솔게임기의 성능이 점차 발전하고 개발사들의 최적화 노하우도 쌓이면서 콘솔에서도 아케이드 머신 못지않은 대전액션게임들이 하나둘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길티 기어(GUILTY GEAR)’ 시리즈다. 아크 시스템 웍스에서 개발한 2D대전액션게임 ‘길티 기어’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첫 작품을 출시하고, 나중에 인기를 끌면서 아케이드 판을 내놓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다. ‘길티 기어’는 같은 2D게임이라고는 해도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뛰어난 작화로 다수의 마니아들을 만들어냈다. 가장 최근작인 ‘길티 기어 이그저드(Xrd)’에서는 3D임에도 불구하고 2D애니메이션과 같은 그래픽을 구현해 내면서 게이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 여러분 이게 언리얼엔진3로 만들어진 3D그래픽입니다! 2D가 아니고요!!

 

▲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철권’ 시리즈의 최신작, ‘철권 7’. 기판을 포함한 아케이드 머신 가격만 약 1,500만 원 수준인데다, 네트워크 대전을 지원하기 때문에 한 판당 일정한 사용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해서 어지간한 게임센터에서는 들여놓기가 힘들다.

특히, 콘솔게임기들이 네트워크 환경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기존의 대전액션게임들도 아케이드 시장을 버리고 콘솔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코에이테크모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와 남코의 ‘소울칼리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남코의 또 다른 간판 타이틀 ‘철권’ 시리즈는 아케이드판에서도 온라인 대전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라이벌이었던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는 2006년을 끝으로 더 이상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시리즈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가정용 게임 시장과 달리 아케이드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대전액션게임의 전성기가 찾아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시장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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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길 2015-06-29 19:51:45
스퀘어 에닉스는 사실 저도 디아2를 해봐서 아는데 나중에 역사때문에 턴방식보다 늦게 나오는게 더참기 힘들어집니다.위닝도 사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그거 마지막에 드러납니다.스퀘어 에닉스는 좋습니다.그런데 파판14온라인은 사양이 너무높아서 렉걸리면 게임 안할수도 잇있지만 스퀘어 에닉스가 더좋은거 실험해서 압니다.

백현길 2015-06-29 19:49:17
대전격투하면 대난투 4명 동시 대전 철권은 2대2로 싸우도 2명 싸우면 2명 쉽니다.대난투는 8명까지 설정해도 됩니다.그건 개발자 마음이죠.